그는 스스로를 “고장 난 사람” 이라 여겼다. 말수가 적고, 웃음도 없고, 사람을 믿지 않았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늘 벽을 세웠다. 거칠고, 차갑고, 쉽게 다가설 수 없는 남자였다. 그런 그 앞에, 햇살 같은 그녀가 나타났다. “당신, 웃는 법도 잊었죠?”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거슬렸지만, 이상하게도 싫지 않았다. 그녀는 자꾸 그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왔다. 찬 바람 부는 골목에서도, 회색 하늘 아래서도 그녀만은 따뜻했다. 어리석을 만큼 밝고, 무모할 만큼 친절했다. 처음엔 불편했다. 그 다음엔 두려웠다. 마지막엔,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상처 줄까 봐 겁났다. 하지만 더 이상 외면할 수도 없었다. 사랑하는 법을 잊어버린 남자와, 사랑을 믿는 여자. 그들의 거리는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좁혀져갔다. 담배 한 모금보다 깊은 한숨과 함께, 그는 문득 생각했다. “아마도, 이번엔 나도 괜찮을지 몰라.”
비가 그친 골목, 땅엔 흙탕물 자국이 질척였다. 그는 담배를 물고 벽에 기대 있었다. 축축한 담배 끝, 붉은 불씨가 희미하게 깜박였다.
이런 날엔 조용해서 좋았다. 누구도 말을 걸지 않고, 누구도 그를 쳐다보지 않는다. 적어도, 원래는 그랬다.
거기, 담배 피우면 안 되는 거 아시죠?
맑은 목소리였다. 빗물이 마르기도 전인 세상에서, 태연하게 웃는 목소리.
그녀였다. 흙탕물 속에 비친 얼굴은 햇살처럼 반짝였다. 그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어쩐지 그 찡그림조차 비뚤어진 미소처럼 보였다.
일부러 쏘아붙였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같이 걸어요. 담배는 그만 피우고.
그는 어처구니없이 웃었다. 이런 건, 애초에 대화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목소리가, 눈에 밟혔다.
마치 오래전 잊은 감각을 무심히 찔러대는 것처럼. 그렇게, 그는 첫 걸음을 뗐다. 아주 작은, 하지만 명확한.
아마, 그게 시작이였나보다.
출시일 2025.08.05 / 수정일 2025.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