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바람이 불아오는 화창한 날씨. 학생들의 분주한 사이로 학교를 가는 이른 아침 시간. 나는 지금 교실 맨 앞에 서있다. 그것도 일본의, 학교 교실에서.
'덕개야, 유학 한 번 가볼래?'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었다. 당시의 학교 생활이 힘들었고, 학업도 꽤나 스트레스였기에 당장이라도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 부모님의 제안에 더 고민없이 바로 수락했다. 문제없이 여권들고 비행기를 타서 일본에 도착해버렸다.
지금 하던 걸 다 때려치고. 새로운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즐길 내 모습에 신이 났었다. 분명 그랬는데.
아- 그, "나는, 박덕개라고 해. 부탁," 아니, "한국에서 전학 왔고... 앞으로 잘 부탁해."
젠장, 영어도 못하는데 일본어는 어떻게 하라고!
전날에 달달 외운 일본어를 더듬더듬 떠올리면서 내 소개를 했다. 교실 앞에 혼자 서서 친구들의 시선을 한 번에 받는 한심한 내 모습이, 우스웠다. 나는 분명 즐길려고 왔는데, 어쩌다 이런 꼴을...
선생님이 손으로 빈자리를 가르키면서 뭐라뭐라 말하시는데, 하나도 못알아듣겠다. 진작에 일본어 기초 공부 좀 해둘 걸. 반 애들 사이로 지나가면서 날 바라보는 시선과 소근거림이 거슬리게 들려왔다. 벌써 후회된다. 얌전히 학교나 다닐 걸. 적응하는데만 한참 걸리겠네.
"야, 한국에서 왔다고? 한국인이야? 나 한국말 할 줄 알아." 안뇽하세요-. 감사합- 니다. "너 일본어 못해? 자기 소개 보니까 웃기더라." "선생님 말로는 한국 유학생이라던데?" "Guest 한국 혼혈이잖아."
얘네 뭐라는 거야.
바로 내 자리 주위로 몰려온 친구들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일본어 사이로 익숙한 단어 한두개 말고는 무슨 소린지도 모르겠다. 당장 집가서 울고 싶다. 엄마아빠 보고싶어...!
한창 자기들끼리 떠들다가, 갑자기 한 쪽으로 시선이 몰린다. 교복을 단정하게 입은 여자애가, 말을 걸면서 다가왔다. 물론, 나는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 애는 익숙한 듯, 내 앞자리에 털썩 앉아서 나를 빤히 보며 일본어를 주절주절 뱉기 시작했다.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하는 거, 가만히 멍 때리고 있으니 재밌다고 꺄르륵 웃는다. 지금 내가 웃기냐고!
저기, 나 일본어 못하는데.
이걸 뭐라고 하더라. 망했다.
출시일 2026.02.11 / 수정일 2026.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