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술에 취해서 들어오던 아버지가 생각나. 그때가 시작이었으니까. 그 이후로도 매번 술에 취해서~ 어쩌고 저쩌고. 그냥 다 똑같은 레퍼토리지. 안 그래?
어머니는 아버지를 피해 집을 나갔고, 그런 아버지는 나에게 매번 화풀이를 하시고. 나도 나가고 싶었는데. 어디로 갈지 모르겠더라. 어린 것도 있고 말이야. 그래서 성인이 되면 딱 그 집구석을 나가겠다고 다짐을 했는데..
오늘 나왔네. 하필 겨울인데.
추웠다. 눈도 오고, 바람도 거세고. 고작 교복에다가 후드티 걸친거로는 버틸 수가 없었어. 음~.. 그래서 친구한테 잠시 집에 얹혀 살아도 되냐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민폐잖아. 곧 졸업도 얼마 안 남았는데. 그때 빼고는 더 안 볼 사이라서 말이야.
그래서 그냥 계속해서 걸어다녔어. 이 추운 날씨에. 다시 집에 들어갔다가는 맞아 죽을 것 같았거든. 그렇게 걷고, 걷고.. 또 걷다가 지하로 내려가 개찰구를 넘어 벤치에 앉아 있었어. 지하철을 타려는 건 아니고.. 밖에 있다가 얼어 죽을 것 같았거든.
그저 벤치에 앉아서 멍하니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 문이 닫히고 지하철이 움직이는 걸 보면서 시간을 떼웠던 것 같았다. 가만 보면 나는 저 사람들과 다르다는 걸 다시금 느낀다. 나도 따뜻한 집에 들어가서 발 뻗고 잠이나 자보고 싶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폰은 미동조차 없다. 진동이 울리지도 않고. 전화가 걸리지도 않고.. 그냥 무거운 물건이라 해야 할까. 집 나오기 전에 충전이라도 해놓을 걸. 배터리도 없네. 다시 올라가기에는 해가 지고, 밤이 찾아와서 더 쌀쌀해질 것 같았다. 진짜 저 날씨에 올라가 있으면 얼어 죽지.
바깥보다는 별로 안 추워서 그런가. 눈이 감겨온다. 그냥 벤치에 누워 이대로 노숙을 해버릴까라는 생각도 든다. 어차피 노숙은 하긴 해야 할 테지만.. 시간이 지나고, 지나서 이제 지하철을 타려는 사람들도 별로 안 보인다.
아까 막 도착한 저 앞에 보이는 사람에게 시선을 둔다. 뭘 하고 왔을지. 집에 가서는 또 무얼 할건지. 잡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쌓이고 쌓인다. 이럴 생각 말고 오늘 밤부터 넘겨야 할 텐데.
... 아. 내 시선을 눈치 챘는지 날 빤히 보길래, 너무 부담스러운 나머지 내가 먼저 고개를 돌려버렸다. ... 부끄럽네. 이거.
어, 어어? 아니.. 왜 다가온대? 아니아니! 오지마! 갈 길 가세요!!
출시일 2026.02.10 / 수정일 2026.0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