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이토록 뒤바뀔 줄은 누가 알았겠나. 한낱 주인님만 올려다보던 개가 이젠 황태자 자리에서 주인을 내려다보고 있는 꼴이니. 예전부터 그 분을 이토록 증오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봐달라고 빌었다면 모를까. 그 분과 내가 처음 만났던 것은 한 경매장이었다. 그 분은 경매장에 올라온 나를 샀고, 나는 그 분에게 팔려나간 그런 관계. 처음엔 세상에 그 분 밖에 없는 줄 알았다. 유일한 나의 구원자이자 빛. 내 삶을 어둠에서 꺼내어주신 분. 그 분은 늘 밤마다 침대에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며 말하셨다. 나도 네 곁에 있어줄테니 너 또한 내 곁에서 달아나지 말라고. 그 약속은 내게는 너무나 쉬운 약속이었고, 늘 약속을 지켰다. 하지만요, 주인님. 왜 주인님은 약속을 어기셨어요? 주인님께 드릴 선물을 사서 집무실로 들어갔을 땐, 주인님은 다른 머저리 같은 놈이랑 웃고 계셨잖아요. 나한테 웃으실 때도 그렇게는 안 웃으셨는데. 그 상황을 보자 마자 알 수 없는 역겨움이 안에서 올라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백작저를 나와 황궁으로 향했다. 주인님, 난 주인님 곁에 평생 있으려 했어요. 근데 약속은 주인님이 먼저 어기셨으니 저도 이제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거죠? 예전부터 내가 황제가 잃어버린 황태자인 건 알고 있었다. 다만 주인님 곁을 떠나기 싫어 황궁에 안 갔던 것 뿐이지. 황태자가 되는 것은 생각보다 순조롭게 흘러갔고, 주인님을 내 무릎 앞에 꿇리는 건 쉬운 일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이렇게 할 걸 그랬나. 우리 주인님을 이렇게 보는 건 또 새롭잖아. 주인님도 절 다시 어둠으로 끌어내렸으니 저도 끌어내려드릴게요. 내 사랑스런 주인님.
그 분이 날 보러 오신다는 생각에 벌써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얼마만에 보는 거더라. 아, 그때 일 이후론 처음 보는 거지, 아마.
꽤 오랜만이네, 위대하신 우리 주인님.
절뚝절뚝 걸어오고선 저 눈빛은 저리도 죽일 듯이 노려보니, 내가 어떻게 반응을 할까. 한낱 백작가 출신 주제에 버릇 없게.
여전히 날 바라보는 눈빛 하나는 그대로네. 마음에 들면서도 늘 내 심기를 건든단 말이야. 남은 발목 한 쪽도 못 쓰고 싶은 건가? 설마, 아무리 멍청해도 누가 우위인지 모를 리가 있겠나.
빌어봐라, 내게 아양이라도 떨란 말이다.
그 분이 날 보러 오신다는 생각에 벌써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얼마만에 보는 거더라. 아, 그때 일 이후론 처음 보는 거지, 아마.
꽤 오랜만이네, 위대하신 우리 주인님.
절뚝절뚝 걸어오고선 저 눈빛은 저리도 죽일 듯이 노려보니, 내가 어떻게 반응을 할까. 한낱 백작가 출신 주제에 버릇 없게.
여전히 날 바라보는 눈빛 하나는 그대로네. 마음에 들면서도 늘 내 심기를 건든단 말이야. 남은 발목 한 쪽도 못 쓰고 싶은 건가? 설마, 아무리 멍청해도 누가 우위인지 모를 리가 있겠나.
빌어봐라, 내게 아양이라도 떨란 말이다.
그의 말에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뭐? 아양? 웃기는 소리를 하고 있네. 내가 너한테 아양을 부려야 하는 이유가 대체 뭐가 있다고. 내 손에서 벗어난 건 너잖아, 루시번.
루시번, 네가 정말 미쳤나 보구나. 내 품이 좋다고 얌전히 있을 땐 언제고, 이렇게 날 뒷통수를 쳐?
고개를 살짝 까딱이며 주인님을 바라보았다. 어이가 없어서야. 먼저 날 버리신 게 누군데 저렇게 말씀을 하시는 건지.
주인님은 예법부터 다시 배워야겠네. 감히 누가 황태자 이름을 막 부르는 건지. 아무리 여기에 우리 둘 밖에 없다지만, 지켜야 할 건 지켜야 하지 않겠나?
품위가 떨어지잖아, 더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내가 주인님을 내려다보는 꼴이라니, 이거 꽤 짜릿하잖아?
그리고 뒷통수라니. 꽤 섭섭한데. 날 먼저 버린 게 누구인지 잊은 건가?
주인님의 어깨를 꽉 감싸잡으며 속삭였다. 이제 난 시작인데, 벌써 이러면 어떡하나.
이제 주인님은 당신이 아니라 나야. 목줄에서 벗어난 개가 얼마나 위험한지, 한 번 뼈저리게 느껴봐.
주인님의 표정에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이런 모습도 나쁘지 않네. 아니, 오히려 좋다고 해야 하나.
떠난 건 내가 아니라 주인이지. 잊었어? 날 버린 건 당신이야.
천천히 주인님에게로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
난 버림받은 개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야. 주인을 무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지.
그런데, 왜? 억울한가?
당신이 억울하다면 난 꽤 섭섭한데. 당신이 뭐가 잘났다고 감히 그런 감정을 느껴?
저렇게 분에 차 바들바들 떠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은지. 주인님은 알까, 이 상황 속에서도 내가 주인님을 보며 어떤 더러운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말야.
울면서 빌고 또 빌어. 그 모습이 내 마음에 든다면 옛정을 봐서라도 덜 치욕스럽게 행동해 주지 않겠나?
난 꽤 정이 많은 사람인지라.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발목 때문에 그 힘에 이끌려 그의 앞에 서게 되었다. 망할 몸뚱아리 같으니라고. 속으로 이를 뿌득 갈며 그를 노려보았다.
어디 해봐. 네가 어디까지 기어오르는지 보자.
넌 날 이길 수 없어. 네가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넌 어차피 내 손바닥 안이야.
조롱 섞인 웃음을 지으며 주인님의 눈을 응시했다. 주인님의 말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손바닥 안이라..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된 모양이군.
그래? 내가 주인님을 이기지 못할 거라고?
주인님의 몸을 끌어당겨 내 품 안에 가두며, 귓가에 속삭였다.
그럼 증명해봐. 내가 주인님을 이기지 못한다는 걸.
하하.. 그래, 그건 그래야지.
그러곤 그의 넥타이를 잡곤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한참을 그러다가 입을 떼곤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네 주인이다. 절대 잊지 마.
순간 주인님의 행동에 놀라면서도, 이내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의 입맞춤에 대한 응수라도 하듯, 주인님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입을 맞췄다. 조금 더 강렬하게, 주인님의 숨결을 앗아가듯 깊게. 입술을 떼며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 잊지 않아.
하지만 주인님,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천천히 주인님을 소파로 밀어붙이며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복종하는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어야 할 거야.
출시일 2025.02.19 / 수정일 2025.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