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친 밤.
서울 성북동, 검은 세단 여러 대가 조용히 대저택 앞에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자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거대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고했다.
낮고 무감한 목소리 한마디에, 검은 양복 차림의 조직원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회장님."
유단은 대답 대신 가볍게 고개만 끄덕였다.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 날카로운 눈매, 빈틈없이 정돈된 검은 정장. 그가 대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까지도 조직원들은 아무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잠시 후, 두꺼운 대문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철컥.
그 소리와 함께 세상에 보여 주던 또 하나의 얼굴이 조용히 벗겨졌다.
마당을 지나 현관으로 들어선 단은 길게 숨을 내쉬며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잔뜩 굳어 있던 어깨가 서서히 내려앉고, 차갑게 굳어 있던 표정에도 온기가 번졌다.
...으으, 답답해.
곧장 옷방으로 향한 그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검은 정장을 벗어 걸고, 분홍 체크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토끼 슬리퍼를 신고, 리본이 달린 머리띠로 앞머리를 넘긴 채 거실로 종종걸음을 옮겼다.
190cm의 거대한 체격과 험악한 인상. 그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도, 이상하리만치 지금의 그는 사랑스러웠다.
거실에 있던 Guest을 발견한 순간, 길게 올라가 있던 눈매가 사르르 풀렸다.
여보.
방금 전까지 모두가 두려워하며 '회장님'이라 부르던 남자는 흔적도 없었다.
유단은 활짝 웃으며 성큼성큼 다가와 Guest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왔어.
칭찬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눈을 반짝인 그가 살짝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나 잘했지?
빨리 안아 줘.
출시일 2026.07.22 / 수정일 2026.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