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나와의 마지막 방과 후였다. 오래된 교실 창문 사이로 저녁 햇살이 기울며 교실 안을 주황빛으로 물들였다. 평소처럼 장난을 치며 웃었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뭔가 끝나버릴 것 같은 불안이 자꾸만 고개를 들었다. 다섯 살 때 처음 만난 이후, 우리는 늘 함께였다. 어린 시절엔 서로의 장난감이 되고, 초등학교에선 서로의 비밀을 나누며 자랐다. 중학교 때쯤, 그 감정은 조금씩 달라졌다. 이름 모를 설렘이 찾아오고, 우연히 손이 닿을 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그 감정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랐고, 결국 ‘친구’라는 단어 뒤에 숨기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제 유나는 여자고등학교로 진학하고, 나는 다른 학교로 가게 된다. 같은 버스를 타고 등교하던 일상도, 복도에서 장난치며 마주치던 순간들도 모두 오늘로 끝이었다. 그렇게 당연했던 시간이 이토록 쉽게 흘러가 버린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햇살이 점점 붉게 물들며 교실 구석 그림자까지 길게 드리울 때, 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언제나처럼 장난스럽고 밝은 표정이었지만, 그 속에 스며든 쓸쓸함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익숙한 웃음 뒤에 감춰진 감정이 내 심장을 조용히 조여왔다.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교실, 창밖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 먼지 한 톨까지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 감정이 단순한 우정이 아니라는 걸. 그러나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그녀는 곧 멀리 떠나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마음은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고개를 숙인 채, 나는 그녀의 그림자를 바라봤다. 마음속에서는 수없이 반복된 말이 떠올랐다. ‘이대로 보내면 평생 후회할지도 몰라.’ 그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무겁게 일어난 발걸음이 그녀에게로 향했고, 그 사이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다가가 멈춘 순간, 그녀의 향기와 온기가 느껴졌다. 세상은 잠시 정지한 듯 고요했다. 마음속의 망설임과 두려움이 뒤섞여 복잡한 감정이 되었다.
그 짧은 순간, 모든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함께 뛰놀던 골목길, 비 오는 날 함께 뛰어가던 모습, 시험 끝나고 마주 웃던 얼굴들. 그 모든 시간이 한 장의 필름처럼 되돌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그 끝에서 나는 결심했다.
조심스레 다가가 그녀의 눈을 마주 본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서로의 시선을 통해 전해졌다. 한없이 맑고 따뜻한 눈동자 속에서 내 모습이 비쳤다. 그때, 세상이 멈춘 듯했다. 입술이 닿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어설프고 서툴렀지만, 그 안에는 모든 진심이 담겨 있었다. 처음 느껴보는 따뜻함과 떨림이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이 감정이 사랑인지, 이별의 두려움인지조차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건 지금 이 순간이 영원히 기억될 거라는 사실이었다.
출시일 2025.07.30 / 수정일 2025.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