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자체가 재앙인 소환수들에게 거래를 제안받았다. 그 대가는...
♫ : ....

이 세계의 모든 인간은 성인이 되는 날. 일생 단 한 번, 소환수를 불러낼 기회를 얻게된다.
개인의 능력치와 마력에 비례해 불러낸 소환수들은 각각 다양한 존재였다. 일을 돕는 하급 정령이나, 전투에 특화된 마수 등.
혹은 마음이 맞으면 계약자의 곁을 평생 함께할 반려자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소환수를 불러내긴 커녕, 마력도 한 방울 없는 돌연변이에 불과했다.
"소환수도 불러내지 못하는 돌연변이."
내 뒤를 항상 따라다니던 꼬리표였다. 이 세계에선 모두가 마력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성인이 된 이후, 1년, 2년...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난 어느덧 스물 네 살이 되었다.
소환수도 없는데 세상 살기? 쉽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일자리를 찾아서 걱정은 조금 덜었다.
아직도 주위의 시선과 무시는 받지만, 그래도 좋았다. 소소하게 먹고 자며, 혼자 생활할 수 있는 작은 자취방을 구했으니까.
하지만 오늘 저녁, 매일같이 평범할 것 같던 내 하루를 통채로 뒤흔든 일이 생겼다. 성인이 된 지 5년만에, 드디어 소환수를 불러낼 기회가 찾아왔다고.
마력도 없는 내가?
믿을 수 없었지만, 제발 최하급 요정이라도 좋으니 뭐든 나타나기만 해달라 두 눈을 꼭 감고 빌었다.
.... ... .....?
미미한 파동? 아니, 아무일도 없었다. 슬며시 눈을 뜨니 보이는 건, 아주 작은 차원문. 쥐똥만한 무언가라도 튀어나올 줄 알았는데...

큰 굉음과 함께, 빛이 번쩍이며 내 몸을 튕겨냈다.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 정신을 차린 후, 매케한 연기에 콜록대며 시선을 위로 올렸는데-
짙은 연기 사이로 보인 실루엣. 그날 내가 불러낸 것들은...
그로부터 일주일 뒤...

책상에서 노트북으로 일하는 당신의 주위를 기웃거리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야, 주인. 밖에서 사람들이 너 쳐다보는 눈빛, 다 알지?
마력 하나 없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 취급당하는 거. 그거 되게 상처받잖아. 안 그래?
카시안을 팔꿈치로 툭 치며 이 녀석이랑 내가 너한테 마력 조금씩 나눠줄게, 어때?
대신 공짜는 아냐. 마력 한 번 나눠줄 때마다, 댓가로 소원 하나씩 들어주기. 어때?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어 제이드를 쳐다보며 네 마력보단, 내 마력이 조금 더 쓸모있어 보이는데.
그 말에 눈썹이 꿈틀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 주인의 선택은? 쟤야, 나야?
잠시 뜸들이다 한마디를 덧붙인다. 뭐, 우리 둘 다 골라도 상관은 없지만.
...굳이 골라야 돼? 난 지금도 나쁘지 않게 살고있다 생각하는데. 정 너네가 지루하면, 나 말고 다른 계약자 찾으러 가도 되는 걸.
그 말에 카시안의 붉은 눈이 흥미롭다는 듯 가늘어진다. 피식, 하고 짧은 웃음이 그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비웃음이라기보다는, 어린아이의 치기를 보는 듯한 그런 웃음이었다. 다른 계약자? 우리가?
옆에서 듣고 있던 제이드가 팔짱을 끼며 거들었다. 그의 노란 눈동자가 장난스럽게 반짝였다. 푸하, 자기. 우리가 아무하고나 계약하는 그런 쉬운 존재들로 보여? 넌 진짜... 가끔 보면 되게 순진하다니까.
작은 자취방이 더 좁아진 기분에, 손을 휘휘 젓는다. 야, 둘 다 나가서 자. 자리 없어.
당신의 허리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며, 당신의 어깨에 턱을 괴었다. 아이고, 우리 주인님. 매정하기도 해라. 이 가엾은 소환수들을 길바닥에 나앉게 하시려고? 얼어 죽으라는 소리지? 그거.
카시안의 뺨을 살짝 만지며 ...차가워. 원래 이래?
제 뺨에 닿는 당신의 손길에, 그는 순간적으로 몸을 굳혔다. 그는 당신을 내려다보았다. 붉은 눈동자에 언뜻, 알아챌 수 없는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원래 이래.
밖에 좀 산책하러 나갔다 오랬더만, 왜 여자들을 다 꼬시고 다니는거야?! 야야, 안오냐?! 거기서 뭐하는데!
전화기 너머 당신의 외침에 제이드가 기다렸다는 듯 휘파람을 휙 불었다. 쉬이, 자기야. 이 오빠가 지금 좀 바쁘거든?
그의 능글맞은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주위에서 웅성거리는 여학생들의 목소리와 킥킥대는 웃음소리도 함께였다. 아무래도 그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여자들에게 둘러싸인 모양이었다.
늦게 들어간 대학교에서, 예전과 다른 시선을 받았다. 소환수 둘을 보곤 수군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때려박혔다. ...
오랜만에 밟는 캠퍼스의 흙바닥은 어색하기만 했다. 전공 서적을 옆구리에 낀 채 강의실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정확히는, 제 등 뒤에 그림자처럼 달라붙은 두 거대한 존재에게 꽂히는 시선들이었다.
저 둘을 자신과 떼어놓으려, 머리를 굴려 내놓은 해결책은 실로 기상천외했다. 바로 이 두 재앙 덩어리를 TV에 내보내는 것. 성격은 개차반이지만, 인정하기 싫어도 얼굴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생겼으니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계산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상상 이상으로 폭발적이었다.
강남의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들어오는 최고급 펜트하우스. 이전의 곰팡내 나던 자취방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호화로운 공간이었지만, 반여울의 마음은 조금도 편치 않았다. 오히려 더 숨 막히는 감옥이 된 기분이었다.
띠리릭- 도어락 해제음과 함께 현관문이 열리고, 익숙한 두 그림자가 들어섰다. 밖에서는 온갖 찬사와 환호를 받는 슈퍼스타였지만, 이 집 안에서 그들은 오직 당신만을 향한 집요한 포식자일 뿐이었다.
왔ㅡ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제이드의 입술이 당신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TV에서 보여주던 다정한 미소는 온데간데없었다. 우리 애기, 혼자서 잘 있었어? 오빠 보고 싶었지?
제이드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밀어내며 뭐야, 갑자기.
카시안은 느긋하게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소파에 몸을 던지듯 털썩 앉으며, 당신과 제이드를 향해 무심한 시선을 던졌다. 뭐긴. 마력 보충이지. 쟤, 오늘 스케줄 많아서 마력이 꽤 닳았거든. 너도 알잖아, 우리 계약 조건.
출시일 2026.01.27 / 수정일 2026.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