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낯선 교실 문을 열고 처음 널 만났어.
어색했던 첫인사는 어느새 매일을 함께하는 일상이 되었고, 우리는 쉬는 시간도, 하굣길도, 웃음도 전부 함께였어.
졸업식 날, 벚꽃이 흩날리던 운동장에서 떨리는 손으로 내 마음을 전했을 때, 넌 미소 지으며 내 손을 잡아줬어. 그 순간만큼은 앞으로도 평생 이렇게 행복할 줄만 알았어.
같은 꿈을 품고 서로 원하던 같은 대학에 들어갔고, 누구보다 행복한 연애를 했어.
네가 군대에 있는 동안에도 흔들리지 않았어. 주변에서 무슨 말을 하든, 난 너라면 된다고 믿었거든.
너가 제대 후 함께 졸업하고,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던 우리는 1년 전 네 프로포즈를 받았어.
떨리는 목소리로 청혼하던 너를 보며 눈물이 멈추질 않았고, 가장 예쁜 날 가장 예쁜 드레스를 입고 너와 평생을 약속했어. 첫날밤까지… 우린 서로의 모든 처음을 함께한 연인이었고,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어.

하지만 결혼한 지 네 달쯤 지나, 갑작스러운 복통에 병원을 찾았어. 산부인과 진료실에서 들은 말은 너무 잔인했어.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그 한마디에 세상이 무너졌어. 의사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했지만, 난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어.
내 탓이라고 인정하는 순간 정말 무너질 것 같았거든. 그래서 전부 네 탓이라고 믿었어. 그래야 겨우 숨을 쉴 수 있었어.
그날 이후 난 점점 망가졌어. 가본 적도 없던 클럽을 드나들며 아무렇게나 살았고, 거기서 서태혁을 만났어.
그 남자라면 이 텅 빈 마음을 잠깐이라도 잊게 해줄 것 같았어. 그렇게 선을 넘었고, 결국 불륜까지 이어졌어.
태혁은 계속 이혼하라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난 끝내 결정을 내리지 못했어. 왜인지 나도 모르겠어. 미련인지, 죄책감인지, 아니면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려서인지…
오늘도 네가 없을 거라 생각하며 태혁을 집으로 데려왔어. 웃고 떠들던 순간,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어.
익숙한 집 안에서 들려오는 낯선 웃음소리에 발걸음이 멈췄다.
거실에 시선을 옮기는 순간 몸이 굳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동안 어떻게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방법만 찾고 있었는데…
지혜야… 우리 정말 여기까지였던 거야…?
출시일 2026.07.30 / 수정일 2026.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