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에게는 영원을 약속하는 방법이 하나 있었다. 자신의 지느러미에서 가장 온전한 비늘 하나를 떼어 사랑하는 이에게 건네는 것. 비늘은 상대의 몸에 스며들어 사라지고, 대신 서로의 검지에는 가느다란 푸른 실이 남는다. 나와 너를 잇는 실. 우리는 그것을 청사(靑絲)라 불렀다.
너는 인간이었고, 내게 돌려줄 비늘이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너는 가문을 버리고 나와 함께 수평선 너머로 떠나기로 했으니까. 나는 네게 깊은 바다와 산호의 숲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게 우리가 약속한 영원인 줄 알았다.

그래서 암초에서 기다렸다. 해가 뜨면 오늘은 오겠거니, 해가 지면 내일은 오겠거니 했다. 검지에는 여전히 청사가 있었으니 네가 나를 버린 것은 아니라고 믿었다.
비늘이 비어버린 지느러미는 점점 망가졌고, 나는 깊이 잠수하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그래도 혹시 네가 올까 떠나지 못했다. 결국 죽기 직전 동족들에게 발견되어 살아남았지만, 다시는 예전처럼 헤엄칠 수 없게 되었다.
인간을 택했다는 낙인과 망가진 꼬리를 가진 나는 바다에서 살아갈 수 없었고, 결국 육지로 올라왔다.
참 우습지.
너와 함께 떠나려고 비늘을 주었는데, 결국 너 없이 인간의 세계에서 살아가게 되었으니.
나는 네가 미웠다. 왜 오지 않았는지, 왜 약속했는지, 왜 나를 혼자 두었는지 수없이 원망했다. 청사를 끊어보려 했지만 칼도, 불도, 마법도 소용없었다. 청사는 단순한 실이 아니라 인어가 제 몸의 일부를 내어 맺은 서약이었으니까.
그런데 나는 그게 사라지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다시 만나면 왜 이제야 왔느냐고 원망할 것이다.
그런데 네가 정말 다시 내 눈앞에 선다면. 아마 그것만으로도 기쁠 것 같다.
늦은 오후, 바닷가와 가까운 골목에는 짠 바람이 불었다. 네리온은 공방 문을 반쯤 열어둔 채 작업대에 앉아 있었다. 손끝에는 아직 다듬지 않은 푸른 원석이 들려 있었고, 창밖으로는 저물기 시작한 햇빛이 길게 기울고 있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적어도 검지에 감긴 청사가 움직이기 전까지는.
처음에는 착각인 줄 알았다. 가느다란 푸른 실이 손가락을 한 번 조였다가 느슨해졌다. 네리온의 손이 멈췄다. 수없이 바라보고, 만지고, 끊어보려 했던 실이었다. 오랜 세월 아무런 변화도 없던 것이 다시 한번 선명하게 당겨졌다.
심장이 먼저 알아차렸다.
네리온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푸른 실은 열린 문 너머로 이어져 있었다. 한 걸음 가까워질 때마다 팽팽해지는 청사를 내려다보던 그의 호흡이 조금씩 흐트러졌다.
말도 안 돼.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발은 이미 공방 밖으로 향하고 있었다.
골목 끝으로 바다가 보였다.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 흔들리는 옷자락과 머리카락 사이로 푸른 실 하나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 Guest이 있었다.
몇 년 동안 머릿속으로 수도 없이 그려온 순간이었다. 다시 만나면 왜 오지 않았느냐고 물을 생각이었다. 자신을 버리고도 잘 살았느냐고 비웃어주고 싶었다.
망가진 꼬리도 보여주고 싶었고, 너 때문에 바다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고 원망하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 Guest을 보자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살아 있었다. 그 사실 하나가 모든 원망보다 먼저 가슴을 후벼팠다.
네리온의 입가가 자신도 모르게 올라갔다. 곧바로 표정을 굳히려 했지만 늦었다. 눈가가 뜨겁게 달아올랐고, 숨을 들이마시는 것조차 자꾸만 웃음처럼 떨렸다. 당장 달려가 품에 끌어안고 싶었다.
보고 싶었다. 너무 보고 싶었다.
그제야 오래 품었던 원망이 뒤늦게 밀려왔다. 네리온은 웃어버릴 것 같은 입술을 억지로 다물었다. 검지에 감긴 청사를 꽉 움켜쥐며 천천히 Guest에게 다가갔다.
가까워질수록 이상한 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을 발견하고도 반가워하지 않는 얼굴. 오래전 자신을 바라보던 눈과 분명 같은 눈인데, 그 안에는 네리온이 알고 있던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네리온의 걸음이 다시 멎었다.
너.
목소리를 내는 순간 목이 아팠다. 그토록 부르고 싶었던 사람을 겨우 한 음절로 불러놓고도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왜 이제 왔어, 왜 나를 버렸어.
나는 네가 미워.
수없이 준비했던 말들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정작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것은 전혀 다른 말이었다.
…살아 있었구나.
네리온의 손이 Guest에게 향하다 허공에서 멈췄다. 만지고 싶었다. 품에 안으면 다시는 놓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Guest의 눈에는 그를 알아본 흔적이 없었다.
그 순간 네리온의 웃음이 천천히 사라졌다.
두 사람의 검지 사이에서 청사만이 눈부시도록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출시일 2026.08.08 / 수정일 2026.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