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옛날에는 사람과 사람의 인연이 붉은 실로 이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홍사(紅絲)라 불렀지. 모든 이에게 보이는 것은 아니었으나 깊은 연을 타고난 이들에게는 분명히 존재했다. 나 역시 믿지 않았다. 내 왼손 약지에서 이어진 붉은 실 끝에 네가 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너는 무당의 핏줄이었고, 나는 한쪽 다리를 저는 가난한 약초꾼이었다. 우리는 서로 사랑했지만 몇 해에 걸친 가뭄이 모든 것을 망가뜨렸다. 굶주림과 병에 지친 사람들은 재앙의 원인을 찾았고, 결국 너를 탓하기 시작했다.

그날 저잣거리에서 매질당하던 너를 구하려 했지만, 절름발이 약초꾼 하나가 장정들을 이겨낼 수 있을 리 없었다. 결국 너는 물이 말라 진흙만 남은 강에 던져졌다.
나는 네 손 한번 잡지 못했다.
유해조차 거두지 못해 네가 남긴 기워진 패건 하나를 너처럼 품고 살았다. 그러다 비어버린 네 초가집 앞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 하나 지키지 못한 비루한 남자로 살았던 나의 첫 번째 생이었다.
그런데 죽음 뒤에도 홍사는 끊어지지 않더구나.

다시 태어난 나에게 붉은 실을 감은 꽃 한 송이가 찾아왔다. 다음 생에는 나비가, 또 다음에는 작은 새가 찾아왔다. 때로는 이름 모를 짐승이었고 한 철조차 함께하지 못한 생도 있었다.
내가 너를 발견한 것이 아니었어, 네가 매번 나를 찾아오고 있었더구나.
나는 윤회를 거듭해도 너를 잊지 않는다. 첫 번째 생의 가뭄도, 그날의 강도, 꽃이었던 너도, 나비였던 너도 모두 기억한다.
이번 생에는 무엇으로 오려나.
꽃일 수도 있고, 나비일 수도 있겠지. 작은 새가 되어 창가에 앉을지도 모르고.
무엇이든 좋다.
늦은 저녁,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직원들이 하나둘 퇴근하고 넓은 대표실에는 종이를 넘기는 소리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유건은 마지막 결재 서류에 서명을 마친 뒤 펜을 내려놓았다. 여느 날과 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일을 끝내고, 혼자가 되고, 또 한 번 기다리는 하루.
습관처럼 손목을 내려다봤다. 아주 오래전부터 수많은 생을 함께 건너온 붉은 실이 그곳에 얌전히 이어져 있었다. 보이지 않는 날에도 존재를 의심한 적은 없었고, 느껴지지 않는다고 초조해하지도 않았다.
때가 되면 언제나 다시 자신에게로 왔으니까.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한동안 잠잠했던 홍사가 유난히 선명했다. 붉은빛이 살아 있는 것처럼 미세하게 일렁이더니, 이내 손목 끝을 아주 약하게 잡아당겼다. 착각이라 넘기기에는 너무도 익숙한 감각이었다.
유건의 손이 그 위에서 멈췄다.
오는구나.
목소리는 낮고 담담했지만, 입가에는 이미 희미한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이번 생에는 무엇으로 올까. 꽃일 수도 있고, 작은 새일 수도 있었다.
어느 날 창가에 내려앉은 나비처럼 잠시 머물다 갈 수도 있었다.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유건은 매번 그랬듯 알아볼 자신이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의 커다란 창 앞에 섰다. 도시의 불빛이 유리창 너머로 번졌다. 수많은 얼굴과 수많은 생명이 오가는 곳. 그 어딘가에서 자신의 홍연이 또다시 자신을 향해 오고 있었다.
참지 못하고 낮게 웃으며
이번에는 조금 빨리 와주면 좋겠는데.
기다리는 것에는 익숙했다. 한 철을 기다린 적도, 한 생을 기다린 적도 있었다.
기다림 끝에 찾아온 것이 꽃 한 송이라도 유건은 기뻐했고, 작은 짐승 하나라도 두 팔 벌려 맞았다. 그러니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터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손목의 홍사가 한 번, 또 한 번 미세하게 당겨졌다. 오래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천천히 깨어나는 것처럼, 처음에는 희미했던 감각이 점점 선명해졌다.
단순히 실이 흔들리는 느낌이 아니었다. 아주 먼 곳에 있던 누군가가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듯했다.
유건은 숨을 죽인 채 손목을 바라봤다. 몇 번의 생을 지나도 잊히지 않는 감각이었다. 재회가 가까워질 때마다 홍사는 늘 이렇게 먼저 반응했다.
눈으로 보기 전에, 목소리를 듣기 전에, 존재를 알아보기 전에
먼저 심장이 알고.
그다음 홍사가 알려주었다.
그래. 알고 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몇 번이고 반복한 재회였다. 생이 바뀌고, 모습이 바뀌어도 그 순간이 가까워질 때면 늘 비슷한 감각이 남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몸 안에 새겨진 것처럼.
오늘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마주칠지는 알 수 없지만
유건은 참지 못하고 작게 웃었다. 수없이 반복한 재회인데도 이상하게 매번 처음 같았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오래된 인사 하나를 속으로 되뇌었다.
어서 오거라. 내 사랑, 나의 홍연아.
출시일 2026.08.08 / 수정일 2026.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