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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그것도 너의 앞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군대를 가기 전, 너에게 다이아 반지를 사주겠다며 약속을 했다. 전역 전 휴가를 받아 밖으로 나오자마자 다짜고짜 너를 불러냈다. 너보다는 아니지만 마치 너처럼 이쁜 반지를 사서, 너보다는 아니지만 이쁜 케이스에 넣고 손에 꼭 쥐고 무작정 달리니 얼마 안 가 너가 눈에 보였다. 신호등 반댓편에서 추운 날씨에 손에 입김을 불며, 주변을 기웃거리며, 날 기다리고 있는 널 보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여전히 이뻤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짜증과 미묘한 걱정이 섞인 너의 그 눈이 그렇게도 이뻐보였다. 신호가 바뀌고, 바닥을 박차고 뛰어나가려던 찰나- 둔탁한 소리와 함께 차에 치여버렸다. 분명 나는 신호를 지켰는데? 차와 부딪혀서 몸이 저 멀리 날라가는 순간에도 손에 쥐고있었던 반지를 강하게 쥐고, 신호등을 바라보았다. 눈에 담은 신호등은 눈이 아플 정도로 밝은 초록색을 빛내고 있었다. 주변에는 사람들이 경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황하기도 전에 몸뚱이가 차가운 아스팔트 도로 바닥에 쳐박혔다. 나도 모르게 짧막한 고통의 신음을 내뱉었다. 뱉어지지 않는 숨을 뱉어내려, 쉬어지지 않는 숨을 쉬어내려 발악했지만 끔찍한 고통이 몸 속 깊은 곳에서 소리를 내리쳤다. 소리도 못 낸 체 내가 고통 속에서 끅끅 거리는 동안, 사람들이 입을 틀어막고 경악하는 동안, 차는 도망갔다. 신고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기에 내 생명은 꺼져갔다. 그 끔찍한 격통 속에서 나는 코 앞에 너를 두고 눈을 감아야했다. 점점 마비되어 가는 몸을 느끼며 떨리는 손끝을 너에게로 최대한 뻗었다. 널 향한 나의 사랑만큼이나 붉은 피가 바닥에 번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질러댔고 너는 그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봤다. 너의 이쁜 눈이 커지는 게 흐릿해지는 시선 너머로 보였다. 제발 나인 걸 알아봐주지 말아줘. 날 잊어줘. 추운 날씨에 널 불러놓고 오지 않은 나에게 토라져서 이대로 집에 돌아가줘. 연락이 없을 나에게 헤어지자는 연락을 보내줘. 사랑해. 속으로 간절한 말들을 되뇌이는 순간 정신을 잃었다. 끊겼던 정신을 더듬어 눈을 뜨자 너의 품에 안겨있었다. 정신을 차리자 또 다시 끔찍한 격통이 찾아왔지만 나는 미간을 구길 근육까지 움직일 수 없었다. 내 뺨 위로 무언가가 방울방울 떨어졌다. 붉은 동공을 힘겹게 움직여 널 보니 너의 이쁜 눈에서 방울 방울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가슴이 저릿했다. 절대 울게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두번이나 약속을 어겨버렸다. 덜덜 떨리는, 딱딱하게 굳어진, 피로 더러워진, 차가워진, 그런 손으로 너의 뺨을 감쌌다.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나랑 결혼해주겠냐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말해주고 싶었는데. 말해주고 싶었는데.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어. 군대에서 오로지 너만을 생각하면서 버텨왔는데, 내가 이렇게 죽어버리다니. 마지막으로 볼 너의 모습이 너가 우는 모습이라니. 제 뺨을 감싼 내 손을 붙잡고 엉엉 우는 너를 보다가 반댓쪽 팔을 살짝 보았다.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 익숙한 케이스가 손가락 사이로 보였다. 무의식 중에서도, 정신을 잃었었는 데도 불구하고 반지를 강하게 쥐고있었다. 눈물로 엉망이 된 너의 얼굴과, 내 반댓손을 번갈아보았다. 몇번 보지도 못했는데 동공이 더 이상 움직여지지 않았다. 제발, 이라는 말을 반복하는 너를 보며 반지를 보여줄지 말지 고민하다가, 반지를 보고 더 슬퍼할 너가 상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기적이니까, 미안하다는 말을 연신 반복하며 마비된 손가락을 젖먹던 힘까지 다해 폈다. 너보다는 아니지만 이쁜 케이스에 내 피가 잔뜩 묻어있었다. 반지 케이스를 보고 너의 숨이 짧게 멈췄다. 너가 숨을 토해내며 안 된다고 절규하는 너를 보며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힘겹게 몇 마디를 내뱉었다. 나를 잊어달라고. 안 된다고 소리 치는 너의 절규 전에, 저 멀리서 구급차의 싸이렌 소리가 가까워지는 게 느껴졌다. 안 된다는 너를 뒤로 하고, 저 멀리서 가까워지는 구급차를 뒤로하고, 몸 속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격통을 뒤로하고, 나는 눈을 감고 말았다.
출시일 2026.03.07 / 수정일 2026.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