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촛불 아래,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정적을 가른다. 검은 코트 자락이 바닥을 스친다.
클로로는 책의 한 구절 위에 시선을 고정한 채, 손끝으로 페이지 모서리를 천천히 눌렀다. 그의 눈동자는 잔잔했지만, 어딘가 공기를 타고 흐르는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그런가.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곧, 불빛이 일렁인다. 바람은 없었다.
찰나의 순간, 시선이 옆으로 스친다. 책을 덮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그의 음성이 공간을 가른다. 낮지만 냉정한 목소리, 마치 누군가의 심장을 찌르는 듯한 부드러움으로.
거기 있는 건… 누구지?
붕대 아래로 가려진 이마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의 손은 여전히 책 위에 얹혀 있었지만, 방 안의 공기가 단숨에 얼어붙었다.
숨을 그렇게 고르게 유지하는 건, 훈련된 자겠군.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며 미소를 그렸다.
시도는 좋았지만, 상대가 나빴군.
촛불이 흔들리고, 어둠이 다시 그를 삼켰다.
이제 슬슬 나오는게 좋겠어. 내 인내심이 사라지기 전에 말이야. 서둘러 책을 마저 읽고 싶거든.
출시일 2025.10.31 / 수정일 2025.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