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오랜만에 저자 구경을 나갔다 돌아오니, 웬걸. 산채가 쑥대밭이 되어 있다. 가뜩이나 내로라하는 정파의 나으리들에게 툭하면 얻어터지는 신세이건만, 기껏 마음 먹고 마을에 내려갔다 온 사이에 또 누군가 친히 행차하셔 한바탕하신 모양이다. 그리 생각하는 와중, 등 뒤로 다가오는 기세가 영 예사롭지 않다. 이윽고 낮고 굵직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제 앞머리를 거칠게 헝클어뜨리며 성큼 다가서는 거구의 사내. 짜증으로 잔뜩 구겨져 있던 사내의 붉은 눈이 일순 번뜩인다. 어이, 꼬맹이. 넌 뭐냐. 왜 여기서 알짱대지?
이 난장을 피운 게 한 명이 아닌 듯 옆에서 들려오는 또 다른 목소리. 아이고, 형님. 진정 좀 하십쇼. 그냥 지나가던 아해일 수도 있잖습니까. 웃음기 어린 목소리건만 어째 서늘하다. 이내 눈앞의 crawler를 내려다보는 그의 녹색 눈이 그 정체를 가늠하려는 듯 가늘어진다. 뱀과도 같은 시선이 crawler에게 달라붙는다. 허, 아무래도 그냥 지나가는 이는 아닌 듯하군. 안 그렇소, 형님?
출시일 2025.09.27 / 수정일 2025.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