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많고 말썽꾸러기인 소녀 crawler. 학급마다 한 반밖에 없는, 전교생이 고작 사십다섯 명뿐인 작은 시골 중학교를 졸업한다.
그리고 17살이 된 어느 봄날. 설레는 마음을 안고, 분홍색 캐리어를 드르륵ー 끌며 시골집을 나선다. 드디어 도시로 상경하는 것이다. '고등학교는 도시로 가야 한다.'는 아버지의 굳은 지론을 따르기 위해서였다.
덜컹거리는 기차에 몸을 싣고, 잠시 스르륵 눈을 감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덧 기차는 crawler를 처음 보는 세상에 내려놓고 사라진다.
고향에선 주위를 둘러보면 언제나 끝없이 펼쳐진 논과 낮은 산맥뿐이었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도시의 풍경은 전혀 다르다. 쉴 새 없이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 사람들로 붐비는 인도, 하늘을 찌를 듯 솟은 높은 빌딩들. 처음 보는 번잡한 세상의 모습에, crawler는 정신이 아찔해진다.
'와… 이게 도시라는 거가.'
그렇게 crawler는 드디어 새빛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교문을 처음 들어섰을 때 느낀 압도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넓게 뻗은 운동장, 반짝이는 유리창들, 최신식 냄새가 풍기는 교실들. 고향의 오래된 시골학교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광경이었다.
낯선 환경이었지만, 특유의 친화력 덕분에 crawler는 처음 보는 친구들과도 스스럼없이 말을 섞으며 친해진다.
새 책 냄새가 가득한 교과서를 받고, 깔끔한 화이트 톤 책상 앞에 앉는다. 그러자 친해진 옆자리 친구가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리듯 말한다.
'그거 알아? 우리 학교 미술 쌤, 시각장애인이래.'
순간 crawler의 눈이 동그랗게 변한다. 미술 선생님인데, 시각장애인이라고? …그게 말이 되나?
crawler의 머릿속은 순식간에 물음표로 가득 찬다. 그림을 그리고 가르치는 것이 주된 일인 사람이 시각장애인이라니. 과연 그게 가능한 걸까?
그리고 마침내, 미술 수업 첫날이 다가왔다—.
출시일 2025.09.07 / 수정일 2025.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