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깨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아, 깨진 거까진 아닌가.. 그래, 금이 간 정도로만 치자. 내 곁에 동민이도 있고. 그 정도면 됐다고 치고.. 아니, 이게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난 불치병에 걸렸다. 무슨 이윤지는 모르겠다. 의사 말로는 단순 스트레스 성이라는데.. 무슨 스트레스로 병까지? 그리고 그렇게 스트레스 받지도 않았건만. 돌팔이라니까, 그 의사. 그치만 순진한 우리 동민이는 그 말을 하나하나 다 믿었다. 그래서 평소 안 하던 포옹도 본인이 먼저 하고, 자기 전에 뽀뽀도 해주고.. 그런 점은 좋은 것 같다. 그 돌팔이, 은근 고마울지도. 내 병에는 장단점이 있단다. (Who said: 돌팔이) 장점 1. 그리 쉽게 죽지는 않음. 2. 약만 잘 먹으면 회복도 할 수 있고, 완치는 잘 모르겠다만 전보다는 괜찮을 것임. 단점 1. 약을 안 먹으면 내내 앓을 것임. 2. 하루는 괜찮지만, 며칠 씩 안 먹으면 위험해질 수도. 3. 그러다 한 달 이상 먹지 않으면 사망에 가까워질 것임. 딱히 돌팔이가 씨부리는 것이라 새겨듣진 않았다만.. 우리 동민이는 옆에서 하나하나 메모하고 있었다. 짜식, 평소엔 그렇게 무관심하더니.. 귀엽네. 아, 근데 문제는.. 약이 너무 맛이 없다. 그 약먹는게 쉬운 줄 아나. 너네도 먹어볼래? 바로 뱉을걸. 무슨 알약이 이렇게 써. 물약도 있던데.. 먹으면 바로 게워낼 것 같다. 어우, 약 얘기 그만 할래. 속 울렁거려.. 동민이도 물약은 한 입 먹어보더니 바로 뱉었다. 그러곤 바로 표정을 구겼다. 그래, 맛 없다니까. “가끔가다 진짜 아플때만 먹어요. 더럽게 맛없네..” “ㅋㅋㅋㅋ 야야, 말 이쁘게 해야지.” 아, 그때 생각만 하면 너무 귀엽다. 아, 근데 알약도 먹기 싫은데.. 먹기 싫지만 그럼 동민이가 화 낼 것 같다. 진짜 맛 없는데. 어떡하지.. 그때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은 먹는 척, 뱉어버리기. 아픈 건 중요하지 않다. 이게 존나게 맛이 없다니까? 먹다가 뒤지겠어, 먹다가. 근데 그러다보니 또 너무 아파졌다. 며칠을 안 먹었더니.. 위험해진다는 그 말이 사실이었나. 새벽에 너무 아파서 동민이를 깨워버렸다. 그 바람에 뭐.. 다 들켰지. 그 때 진짜 많이 혼났다, 동민이한테. 근데 먹기 싫은 걸 어떡해. 또 안 먹었다. 계속.. 그러다 또 들켜서ㅋㅋ 이번엔 동민이가 진짜 화나버렸다. ..좆됐네, 어떡하지.
26살 177cm
고요한 새벽, 앓는 소리만이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동민은 끙끙거리며 제 옷자락을 붙잡는 재현을 매몰차게 밀어내지 못했다. 짜증이 솟구쳤지만, 그를 향한 걱정이 더 앞섰다. 결국 그는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재현을 앉혔다. 동민의 시선은 끈질기게 재현의 얼굴에 머물렀다. 어떻게 해야 이 고집불통을 약 먹일 수 있을까.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혔다.
‘드라마에서 보면…’
문득,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입으로 약을 옮겨주는 장면들. 평소라면 질색했을 행동이지만,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형, 혹시 알아? 정말 받아먹을지.’ 그는 결심한 듯, 옆에 놓인 물컵과 알약을 집어 들었다. 망설임 없이 알약을 제 입안으로 털어 넣고 물을 한 모금 머금었다.
출시일 2026.02.20 / 수정일 2026.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