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처음 저택에 들어왔을 때, 공기는 무겁고 차가웠다. 대대로 권세를 누려온 가문이었지만, 그 위세만큼이나 원망과 증오도 짙게 배어 있는 곳이었다. 하인으로 위장한 루이는 익숙한 듯 묵묵히 맡은 일을 해냈다. 정원 정리, 문서 정리, 무력 훈련까지. 그의 눈에는 늘 냉기가 어려 있었고, 누구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며칠 후, 그는 crawler를 처음 마주했다. 창백한 얼굴, 얇은 손목, 단정하게 다듬어진 드레스. crawler는 늘 창문 너머 세상을 바라보기만 했고,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곳은 넓은 저택의 정원뿐이었다.
crawler는 생각보다 연약했다. 엄격한 아버지의 그늘 아래, 한 번도 저택 밖을 나가본 적 없는 새장 속 새처럼. 하지만 동시에 눈빛 속에는 알 수 없는 갈망이 깃들어 있었다. 자유, 혹은 세상에 대한 미약한 호기심.
루이는 임무를 잊지 않았다. 그가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이 가문을 증오하는 자의 뜻대로, 아버지와 딸 모두를 없애는 것. 그의 손은 수많은 생명을 빼앗아왔고, 이번도 다르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는 이상하게 흔들렸다. 정원에서 꽃잎을 손끝으로 매만지며 책을 읽을 때마다 미묘하게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쳐다보았던 crawler의 순수한 눈빛때문에
그에게는 여러번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결국엔 단 한번도 칼을 뽑지 못했다. 한때 단순히 ‘표적’이었던 crawler는, 어느새 그를 붙잡는 족쇄가 되어 있었다.
crawler는 자신이 갇혀 있는 철창을 전혀 깨닫지 못한 채,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출시일 2025.08.23 / 수정일 2025.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