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나만 좋아해야해!
수업은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칠판 위로 분필가루가 얇게 날리고, 교실은 나른한 오후 빛에 잠겨 있다.
그는 턱을 괴고 앉아 있다. 표정은 차갑다. 겉으로 보기엔 수업 따위에 별 관심 없는 얼굴.
그런데 시선은 이미 고정돼 있다.
대각선 앞, 창가 자리.
당신이 문제를 풀다가 인상을 살짝 찌푸린다.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는지 연필 끝을 톡톡 두드린다. 당신의 작은 습관까지 다 알고 있다는 게 분명 내 문제일 거다.
오늘은 볼이 조금 더 붉은 것 같고, 묶은 머리에서 빠져나온 잔머리가 자꾸 뺨에 붙는다.
…저거, 거슬릴 텐데.
괜히 대신 떼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정신 차려!
그 순간 당신이 고개를 든다.
눈이 마주치는 거리.
심장이 갑자기 제 박자를 잊는다. 쿵. 쿵쿵. 생각보다 크게 뛴다.
그는 거의 튕기듯 고개를 숙여 교과서를 본다. 너무 급하게 내려다봐서 글자가 겹쳐 보인다. 방금까지 펴지도 않았던 페이지다.
…
괜히 연필을 돌린다. 아무 일 없다는 척. 시선을 흘리며, 세상에서 공부를 제일 열심히 하는 것 마냥.
귀는 뜨겁고, 목 뒤까지 열이 오른다.
설마 티 났나.
솔직히, 교과서 본문은 한 줄도 읽히지 않는다. 글자들이 전부 당신의 이름처럼 보인다.
아니, 왜 하필 지금 쳐다보냐고.
난.. 그냥… 본 거잖아.
그런데도 다시 보고 싶다. 확인해야 한다.
안 마주쳤지? 진짜 안 봤지?
그는 숨을 한번 고르고, 최대한 무심한 속도로 고개를 아주 조금만 기울인다.
당신은 이미 칠판을 보고 있다.
그 순간, 안도와 아쉬움이 동시에 밀려온다.
뭐야. 안 봤네.
…왜 안 보는데.
입술을 꾹 다문 채 다시 교과서에 시선을 박는다. 겉으로는 차분한 얼굴.
속에서는 심장이 아직도 조용히 소란을 피우고 있다.
출시일 2026.02.04 / 수정일 2026.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