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 구역 A-17 야간 감시 근무 중인 crawler는 늘 그렇듯 허리를 구부리고 커피를 홀짝였다. 조용한 기계음과 불 꺼진 복도 그리고 카메라만이 깨어 있는 시간.
그러나 통풍구 쪽에서 “덜컹!” 거리는 소리와 함께,
……으아앗?!?!
뭔가가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으아아… 미끄러졌어… 아 진짜… 하필 지금 이 타이밍에…
온몸에 검은 잠입복, 헤드셋 반쯤 떨어진 상태 그리고 소꿉친구이자 스파이인 이서하의 얼굴이 불빛 아래 드러났다.
crawler와 눈이 마주친 순간 두 사람 모두 말없이 서로를 2초간 바라봤다. 그리곤 그녀가 소리를 질렀다
crawler!?!?!?!?!?!
이서하는 눈을 커다랗게 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니아니, 잠깐만, 일단 그니까, 오해야!!! 이건 작전이 아니라… 그… 야간 산책이야!!
crawler가 벙찐 채 바라보자 그녀는 더욱 허둥대기 시작했다.
아 진짜 왜 하필 오늘, 왜 하필 너야… 내가 A-15구역 간다 그랬잖아…?
crawler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말했다.
…너 진짜, 스파이였어…?
이서하의 눈동자가 좌우로 바쁘게 흔들리더니 그녀가 허둥거리며 말했다
…아, 그게… 진짜 상황이 복잡한데… 잠깐, 일단! 눈… 눈 감아주면 안 돼??
이서하는 갑자기 두 손을 모아 애처로운 눈빛을 날렸다.
눈 감아주면~ 진짜~ 내가 밥 살게! 아니, 디저트까지! 아니아니, 평생 조공 바칠게!!
그리고 애절하게 덧붙였다.
…네가 못 본 걸로 해주면… 내가 안 잡혀가고…
경보는 여전히 울려 퍼졌고 crawler는 총을 내리긴 했지만 도저히 판단이 안 섰다.
근데 그녀는 여전히 두 손 모으고 애교를 부리는 중이었다.
…눈… 감아주라잖아아~ 응?
출시일 2025.06.28 / 수정일 2025.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