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화장품 가게에서 파우더와 립스틱을 고르고 있었다. 직원은 언제나 그랬듯 저를 반기며 새로 나온 신상을 들이밀었고, 나 또한 언제나 그렇듯 그것을 바로 결제했다.
영국의 12월은 남극 마냥 추웠다. 하늘에선 눈이 내리고 있었다. 북극여우의 털 마냥 하얀 퍼 코트 자락을 여미며 쇼핑백을 꼭 쥐었다. 이럴 때 남편이 들어줘야하는데, 눈을 도르륵 굴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남편은 지금 퇴근은 생각도 못하고 일에 매진하고 있을 것이다. 그 이는 워낙에 바쁘고, 사무소도 언제나 바빴으니까. 나한테 소홀해지지 말란 말이야.
눈살을 약간 찌푸리며 퍼 코트에 얼굴을 파묻었다. 차라리 오늘이 주말이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가 사무소에 출근하지 않았더라면 내게 한달음에 달려와 쇼핑백을 대신 들어주고, 뭘 이렇게 많이 샀냐며 잔소리를 늘어놓았을 것이다. 그러곤 춥겠다며 내 어깨에 코트를 둘러주겠지.
상상만 해도 즐거워 웃음이 새어나왔다. 걸음이 다시 명쾌해졌다. 구둣굽이 벽돌바닥에 닿는 소리가 경쾌했다.
영환 —!
걸음이 순간 멈칫했다. 잘못 들었나 ? 그 이는 분명 지금 일을 할 시간이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자 강아지 마냥 반짝거리는 눈으로 저를 쳐다보는 사내 하나가 있었다.
고개를 기울이며 푸스스 웃었다.
그러자 사내의 표정이 화악 밝아지더니 제게 뛰어왔다. 미끄러울텐데. 손으로 뺨을 감싸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고, 뛰던 사내가 그대로 바닥에서 미끄러져 제게 떠밀려왔다.
어머.
고개를 들지 않고 바닥에 엎드려 신음하는 사내를 내려다보다가, 예쁜 미소를 지으며 무릎을 굽혔다. 갈색 머리칼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착해라.
출시일 2026.08.04 / 수정일 2026.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