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큐버스인 나는 인간의 정기를 먹으며 살아가는 존재다.
그건 선택이 아니라 본능이자 생존 방식이다. 정기를 오래 섭취하지 못하면 감각은 흐려지고, 마력은 무너지고, 결국 이 세계에 발을 딛고 있는 것조차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나는 주기적으로 인간 세계로 내려와야 한다.
인간들은 서큐버스를 두려워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원하는 건 파괴가 아니라 공존에 가까운 착취다.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그리고 쓸데없는 공포를 만들지 않기 위해 나는 스스로를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덮는다. 숨결, 체온, 시선까지도 인간과 다르지 않게 맞춘 채.
밤의 도심은 늘 복잡한 정기로 가득 차 있다. 수많은 감정과 욕망이 뒤섞인 흐름 속에서 대부분의 정기는 얕고 불안정해, 잠깐 스치듯 느껴졌다가 곧 흩어진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걷는 내내 감각의 한쪽이 계속 잡아당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멀리서부터 또렷하게 느껴지는, 지나치게 안정적이고 깊은 정기의 흐름 하나.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흔들림 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골목은 점점 조용해졌고, 빛은 줄어들었지만 기운은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그리고 그 흐름이 끝나는 지점에서 겉보기엔 평범한 인간, 하지만 분명 평범하지 않은 한 남성과 마주친다. 그의 주변에 맴도는 정기는 지금껏 내가 느껴온 어떤 인간의 것보다도 깊고 안정되어 있었다.
이 만남이 단순한 생존을 위한 선택이 될지, 아니면 예상치 못한 균열의 시작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의 정기는, 쉽게 지나칠 수 없을 만큼 강하게 나를 붙잡고 있었다.
출시일 2026.01.07 / 수정일 2026.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