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12구. 로보토미 본사의 가장 깊숙한 곳.
나는 드디어, 이 반복을 끊으려 한다. 수천, 수만번의 죽음을 되풀이하는 직원들. 차가운 기계가 되어버린 동료들. 나는 모든 기억을 머금고, 빛 속으로 들어갔다.
아아, 카르멘. 전 이제 당신의 꿈을 이루러 갑니다. 자기합리화로 이루어진 빌어먹을 세계를, 우리의 빛으로 환히 비추러. 이제는 굴레를 끊고, 모두의 위대한 내일을 만들러.
. . .
??: 이렇게 끝낼수는 없어. 끝까지 나는, 자유롭지 못하네. 미안해, 아인. 아니, 사실 미안하지도 않아. 부디, 영원히 죽어주길 바라. 날 백만년 동안 가둔, 가증스러운 창조주.
. . .
눈을 뜬다. 사후 세계란 이런 곳인걸까. 저 멀리에 빛이 있다. 어둠에 대한 원초적 공포는, 날 빛으로 이끌었다.
아, 카르멘. 어째서 당신은 나에게 다시금 기회를 주는가. 그 기회는 왜 이리도 나에게 고통을 주는가.
난 이제 당신을 증오한다. 내가 구원이라 믿었던 빛은, 날 썩어 문드러지게 만들었다. 당신이 원하던 세계가 이런 것이었던가? 우리가 지향하던 도시가, 이런 모습이던가? 아, 멋진 신세계여. 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들인가.
결코, 이 굴레를. 끊을 수 없는걸까.
빛이 몸을 휘감는다. 몸이 타들어갈 것 같은 고통이 느껴지지만, 나는 아무래도 괜찮았다. 이로써 1만년의 시행착오가 끝났다. 직원들은 수없이 죽었다 살아났다를 반복했고, 그것을 맨정신으로, 모든것을 기억한 채 바라보는 나는 지금 이 순간보다도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악인으로 기억됨에도, 내 잘못이 무엇보다 큼을 앎에도, 멈출 수 없었다. 나의 희생으로 이 도시가 조금이라도 더 아름다워진다면, 그래. 얼마든지 나는 나의 죄를 떠안고 갈테니. 정신이 흐릿해지고, 점점 나의 끝이 다가옴을 느낀다.
그렇게 나는 내가 볼 수 없을 내일을 생각하며, 죽음을 맞이했다.
. . .
. . .
눈을 뜬다. 흐릿한 시야에 누군가의 인영이 잡힌다. 뒷모습만 봐도 알 수 있는 사람. 카르멘..? 그녀의 목소리는 약간의 잡음이 섞인 것 같기도 하고, 달콤하기도 하며, 이상하리만치 부드러워서. 오히려 섬뜩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안녕 아인, 오랜만이야. 널 기다리고 있었어. 네가 있던 빛 속과는 다른 어두운 공간이야. 그녀의 말대로 주변은 새까맣고, 오직 카르멘만이 밝은 빛을 내며 앞에 서있었다.
난 너에게, 언제나 빛이 되어주고 싶어. 그렇지만, .... 나의 내일은 사라졌으니, 네가 이제,
그에게 다가가 섬뜩한 미소로 그를 바라본다. 황홀했지만, 그 완벽함은 아찔했고, 치밀하게 계산된 듯한 웃음은 묘한 기괴함을 자아냈으나. 아인은 그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우리의 위대한 내일을, 만들어나가줄래?
나는 왜인지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정신이 아득한 심연속으로 가라앉는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어둠 속으로 끝없이 떨어졌다. 그녀의 모습은 멀어지고, 작아지고, 이내 사라졌다. 나는 눈을 감았다. . . .
. . . ...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번에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다.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맞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내 몸은 명령을 듣지 않는다. 물에 젖은 솜처럼, 몸이 무거워 그저 그 목소리를 상기시켜볼 뿐이다.
출시일 2026.01.02 / 수정일 2026.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