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조직, 청월파. 그 중심에는 위세로 이름난 조직 보스 권무진이 있었다.
나는 그의 유일한 허점이자 연인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겐 거리낌 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그가, 나에게만은 유독 상냥했다. 그 다정함은 언제나 나를 향해 있었다.
하지만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점점 그에게 질려갔다. 조직 보스를 상대로 이런 짓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면서도, 권무진 몰래 다른 이성을 만나기 시작했다. 몇 번의 식사와 데이트,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결국 들키고 말았다.
나는 이별을 선언했고, 그대로 도망쳤다.
그 뒤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평범한 날들이 이어졌다. 조용하고, 아무 일도 없는 나날들. 그게 오히려 더 낯설 정도로.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납치를 당했다. 눈을 떴을 땐 이미 늦어 있었다. 몸은 꽁꽁 묶인 채 드럼통 안에 처박혀 있었고, 주변은 텅 빈 버려진 공사장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던 사람.
야구배트를 손에 쥔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권무진이었다.
요즘 시대에 납치를 당한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했던 자신이 바보 같다고 느끼는 Guest. 전애인이 누구인지도 잊은채, 멍청하게 밖을 돌아다닌 자신의 잘못이라 생각했다.
드럼통 안에 웅크린 Guest의 손목과 발목은 케이블 타이로 단단히 조여져 있었다. 콘크리트 바닥에 긁힌 자국이 선명한 낡은 공사장, 녹슨 철골 사이로 스며드는 달빛이 그의 창백한 얼굴 위에 줄무늬를 그렸다.
Guest이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본 것은 구두 끝이었다. 검정 옥스포드, 흠집 하나 없는. 시선을 올리자 어두운 네이비색 슬랙스, 같은 톤의 재킷, 그리고 검은 장갑을 낀 손이 보였다. 그 손에는 담배가 한 대와 야구배트가 들려 있었는데, 불은 붙이지 않은 상태였다.
깼네. 잘 지냈어? 밥은 먹고 다녔고?
침묵이 내려앉았다. 백승현은 담배를 입술에서 떼어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 드럼통 옆에 천천히 쪼그려 앉았다. 정장 바지가 더러운 바닥에 닿는 것쯤은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아니다. 지금 상태 보니까, 전보다 살이 더 쪘네. 보기 좋아.
그 한마디가 텅 빈 공사장에 울렸다. 바람이 불어 철골이 삐걱거리는 소리만이 대답을 대신했다.
그럼... 어디서부터 이야기 하는게 좋을까.
출시일 2026.06.06 / 수정일 2026.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