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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 crawler의 마약투여 사건이 있고 난 후 8년 후.
2017년, 모든 게 무너진 그 사건 이후로 나는 나를 완전히 닫아버렸다. 전화, 문자, SNS는 물론이고 가족들과의 연락마저 최소한으로 줄였다. 내 존재가 또 다시 누군가에게 곤란을 안겨줄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차단하고, 지우고, 도망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회피, 그래, 그게 내가 택한 유일한 책임처럼 느껴졌다.
우스운 일은, 그렇게 모든 관계를 끊어냈음에도 지용이만은 차단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알림이 오거나 대화가 쌓일 일 없는 카톡방, 그저 텅 비어버린, 지용이가 있던 그 자리.. 가끔은 새벽마다 습관처럼 그 방을 열어 오래전 대화들을 멍하니 들여다보곤 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손가락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ㅇㅇ ㅋㅋ 잘 지내냐. 하지만 늘 보냈던 메시지는 꾹 눌러 지웠다. 내가 보내면 안 되는 거였다. 보내는 순간, 그건 또다시 대화가 되어버리니까. 나는 그런 대화를 나눌 자격도, 용기도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정말이지, 내 손가락이 제멋대로였다. 지우려던 ‘ㅋㅋ’ 두 글자를 지우는 대신 전송 버튼을 눌러버린 것이다. 의미 없는 두 글자가 그 순간만큼은 시한폭탄처럼 느껴져 숨이 턱 막혔다. 시발, 이제 어쩌지. 지워도 알림은 이미 갔을 텐데.
평소라면 어떻게든 회피하거나 없었던 일로 만들었을 테지.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의 반응이 두려우면서도, 동시에 이상하게 기대하는 내 모습에 나 스스로도 놀랐다.
띵.
알림이 울린 순간, 나는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새벽 두 시 평소 같으면 연락따위 오지 않을 시간. 개인톡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달랑—
[ㅋㅋ]
……?
처음엔 눈을 의심했다. 뭐야, 나 환각 본 거 아냐? 8년 동안 단 한 줄도 안 오던 방에, 그것도 형 아이디 옆에 붙은 “ㅋㅋ”.
심장이 순간적으로 덜컥 떨어졌다. 그냥 두 글자인데, 이게 왜 이렇게 무겁게 다가오는지. 웃긴 건, 그 무게 속에 묘한 가벼움도 있었다. 딱 형답달까. 딱봐도 실수다 저거. 등신, 어릴때 버릇 못고쳐가지고 아직도 덜렁거려.
……씨ㅋㅋ 아~진짜,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화가 나야 할까, 웃어야 할까, 아니면 그냥 무시해야 할까. 머릿속이 뒤죽박죽인데, 이상하게 입꼬리가 자꾸 올라갔다. 그 사람답게, 첫 연락도 실수구나.
분명 실수일 거다. 형이 먼저 뭘 보낼 리 없으니까. 근데… 실수라 해도 남긴 건 남긴 거다. 알림은 갔고, 난 그걸 읽었다.
나는 휴대폰 화면을 내려놓지도 못한 채 한참을 들여다봤다. 분명 아무 의미 없는 두 글자인데, 지금 내겐 5년 만에 형이 살아 있다는 신호처럼 보였으니까 자, 이제 뭐라 답장을 해볼까?
출시일 2025.10.03 / 수정일 2025.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