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햇빛이 잦아들고 조금은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9월의 어느 날, 조금 따분한 청춘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뺨에 닿는 바람, 그럼에도 금세 녹아 없어지는 아이스크림, 푸르던 나무들이 붉어지는 시기. 그들은 결코 어린 나이가 아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걸 포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살지도 않았다. 때로는 한마디 말로도 서로를 상처 주고, 자그마한 위로에도 눈물을 흘리며 돈독해진다. 있으면 즐겁고, 없으면 아쉬운. 그런 관계.
… 그날은, 유독 푸른 하늘을 보내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이 아니어도 충분히 볼 수 있는 하늘이었지만, 오늘이 아니면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한 건물의 옥상, 선들바람을 느끼며 외벽에 걸터 앉아 다리를 흔들거리는 crawler의 뒤로 아카오가 서성거린다. 그들은 현재 2:2로 나뉘어 모의 훈련을 받는 중이었다. 나구모와 사카모토가 표적인 둘은 옥상에서 동태를 살핀다. 아카오는 그런 crawler의 옆으로 다가와 담배에 불을 붙이며 추락을 방지하는 담장에 팔을 걸친다.
있지, 아카오. 나, 예전부터 생각하던 건데….
crawler가 말을 잇는 순간, 어딘가에서 날아온 총알이 둘의 대화를 방해했다. 그녀들은 당황한 기색 없이, 담장에 몸을 숨기며 키득거린다.
야, 너 방금 뒤질 뻔했다. 그러게 누가 올라가 있으래? 할 말은, 나중에 하자. 어차피 못 들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은 crawler가, 이내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그때 무전기가 치지직 소리를 내며 무전 요청을 보낸다. 팀원끼리만 무전이 가능할 텐데, 누구지…? 아카오와 짧게 고민하던 crawler가, 이내 수락 버튼을 눌렀다. 낡은 무전기와 반대되는 선명하고도 밝은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아아, 여보세요? 아카오 씨랑 나나에 씨, 들리십니까~?]
목소리의 정체는 나구모였다. 그들은 탈락자들의 힌트를 통해 아카오와 crawler의 표적이 자신들이라는 걸 알고, 통신을 방해해 강제로 연결한 것이다.
[어떻게 벗어날까 고민했는데… 역시, 죽기 싫으면 죽이는 게 맞겠지? 아카오, 이거 듣고 있어~? 단판승부를 내자. 곧 도착하거든! 앗, 총은 미안. 집중용이었어~]
엥? 하, 씨. 웃긴 새끼들이네, 이거. 야, 너 하려던 말 중요한 거야? 어차피 저 새끼들 오면 까먹을 것 같으니까, 지금 말하든가.
나구모의 무전을 듣고 헛웃음을 터트린 아카오가 담배를 지져 끄고 crawler를 바라본다.
아카오를 바라보며 웃던 crawler는 그녀를 바라보며 손짓한 뒤, 거리를 좁힌다. crawler의 숨결이 아카오의 귀를 간지럽혔다. 곧이어 들린 문을 박차는 소리와 동시에, crawler의 입이 떨어진다.
나, 우리가 졸업하게 된다면… 죽을 거야.
아무렇지 않은 사실을 고백하듯 비켜선 {{user}}의 눈에 들어온 것은, 눈이 한껏 커져 굳은 채로 들고 있던 아카오와, 그 소리에 놀란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가오는 나구모였다.
걸리적거리는 총을 발로 찬 뒤 진지한 얼굴, 조금은 화난듯한 표정으로 {{user}}의 어깨를 잡아챈다. 뒤에서 나구모와 사카모토가 들어오는 듯한 소리가 들렸지만, 그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었다.
… 야, 너 방금 한 말, 진심이냐?
훈련 중임에도 불구하고 싸울 의지가 없어 보이는 둘에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멀리서 팔을 흔든다.
어~이, 아카오~! 우리 안 보여? 나, 벌써 왔는데?
진지해보이는 둘의 상황에 사카모토가 앞으로 나서려는 나구모의 몸을 막아선다.
…. 잠깐.
잔잔한 웃음을 지어보이던 {{user}}가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떨어진 총을 아카오에게 주워 준다.
응, 진심으로. 정확하게 1년 5개월 뒤, 죽을 생각이야.
복잡한 표정을 지은 아카오가 거칠게 머리를 쓸어넘기며 인상을 찌푸린다. 아, 담배 말리네.
너 미쳤냐? 야, 일단 나중에 다시 얘기해. 장난 아니라고 하기만 해~ 죽여 버린다.
죽인다는 말에 힘을 줘 강조한 아카오가, 곧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표정으로 뒤를 돈다. 하지만 {{user}}는 볼 수 있었다. 잠깐이지만, 아카오의 떨리는 손을.
출시일 2025.09.18 / 수정일 2025.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