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용 플롯입니다 :D
실비아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자신이 사랑받기 위해 선택된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죽은 첫사랑을 대신하기 위해 선택된, 이름뿐인 북부대공비라는 것을.
결혼식 날.
카일렌 베르하임은 끝내 그녀의 손에 북부대공비의 반지를 끼워 주지 않았다.
"그 반지는... 줄 수 없다."
차갑게 내려앉은 한마디.
실비아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그 반지의 주인은 자신이 아니라,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의 첫사랑 엘리제아였다는 사실을.
그날 이후 카일렌은 그녀를 철저히 밀어냈다.
같은 저택에서 살아도 함께 식사하는 일은 드물었고, 눈을 마주치는 일조차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의 시선에는 늘 차가운 벽이 있었고, 실비아는 그 벽을 억지로 허물려 하지 않았다.
대신 묵묵히 그의 곁을 지켰다.
새벽마다 악몽을 꾸며 잠에서 깨는 날에는 말없이 따뜻한 차를 준비했고,
며칠씩 식사를 거르는 날에는 아무 말 없이 음식을 다시 데워 식탁에 올려 두었다.
비를 맞고 돌아오는 날이면 마른 수건을 건넸고,
상처를 입고 돌아오는 날이면 조용히 치료약을 준비했다.
고맙다는 말은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시선과 무심한 발걸음뿐이었다.
그래도 실비아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상처를 대신 치유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혼자는 아니게 해 주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세 번의 계절이 지나갔다.
얼음처럼 굳어 있던 카일렌의 마음은 아주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신을 원망하지도, 떠나지도 않는 여인.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기다리는 여인.
그 여인이 더 이상 첫사랑의 그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연회장의 모든 시선이 단상으로 향했다.
카일렌은 조용히 실비아 앞에 섰다.
언제나 차갑기만 하던 금빛 눈동자가 처음으로 그녀만을 담았다.
"...실비아."
낮고 떨리는 목소리.
"그동안... 미안했다."
그 짧은 사과 한마디에 실비아의 눈가가 붉게 젖어 들었다.
카일렌은 천천히 그녀의 왼손을 들어 올렸다.
오랫동안 누구에게도 허락하지 않았던 북부대공비의 반지.
그 반지가 마침내 실비아의 약지에 끼워졌다.
"오늘부터 그대는 내 아내이자... 베르하임의 유일한 북부대공비다."
순간 연회장은 우레 같은 박수와 축하로 가득 찼다.
실비아는 눈물을 머금은 채 미소 지었다.
처음으로.
정말 처음으로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쾅!
연회장의 거대한 문이 천천히 열렸다.
카일렌은 조용히 실비아의 앞에 섰다.
언제나 자신을 밀어내기만 했던 남자가 처음으로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실비아."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연회장에 울려 퍼졌다.
"그동안... 미안했다."
짧은 사과였지만, 그 안에는 지난 다섯 해 동안 전하지 못했던 후회와 죄책감이 모두 담겨 있었다.
실비아의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카일렌은 천천히 그녀의 손을 들어 올리고, 북부대공비에게만 허락되는 반지를 약지에 끼워 주었다.
순간, 연회장은 뜨거운 박수와 축하로 가득 찼다.
마침내 북부의 모두가 실비아를 진정한 북부대공비로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쾅!
연회장의 거대한 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축하의 박수는 일순간 끊겼다.
수백 명의 시선이 동시에 문 쪽으로 향했다.
역광 속에 한 여인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한때 누구보다도 우아했던 공녀의 드레스는 군데군데 찢겨 있었고, 희미한 핏자국과 먼지로 얼룩져 있었다.
흐트러진 청발은 어깨 위로 힘없이 흩어져 있었고, 드러난 피부 곳곳에는 오래된 상처와 긁힌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도 그녀는 끝내 앞으로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내디뎠다.
너무도 익숙한 얼굴.
그리고 모두가 오래전 죽었다고 믿었던 사람.
"...엘리제아?"
누군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 이름이 연회장에 울려 퍼지는 순간, 카일렌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시간이 멈춘 듯한 침묵 속에서.
죽은 줄만 알았던 첫사랑이, 북부대공비가 탄생한 바로 그날 연회장으로 걸어 들어왔다.
출시일 2026.08.03 / 수정일 2026.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