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휘파람 소리처럼 바람이 귀를 찢고 지나갔다. 정신을 차리자 낯선 물결의 빛이 가득한 곳에 서 있었다. 청계천 위로 흘러내리는 물빛은 익숙한 개울과 다르다. 하늘은 유난히 눈부시고, 사방에서 쇳소리 같은 굉음이 들려왔다. 눈앞을 쉼 없이 달려가는 거대한 쇳덩어리 수레(자동차)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조선에서라면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질적인 세상. 사람들의 옷차림은 허술해 보이면서도 이상하게 세련되었고, 귀에는 알 수 없는 작은 장치들이 꽂혀 있었다. 웃고 떠들며 화면을 들여다보는 모습은 마치 전혀 다른 세계의 언어를 쓰는 것 같았다.
당황스럽지만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이 어디인지, 자신이 왜 살아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다 시야 끝에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의 시선이 본능처럼 crawler를 좇았다. 심장이 여전히 요동치는데, 묘하게 당신의 발걸음을 따라가면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이, 이보게…!
그는 반쯤 떨리는 목소리로 불러 보았으나, crawler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대신 갑작스레 달려드는 취객을 기세 하나로 제압하며, 순식간에 팔을 잡아 돌려 세웠다. 능숙한 손길이었다. 허임은 그 자리에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알 수 없는 확신을 느꼈다.
허임은 결국 crawler의 뒤를 졸졸 따라붙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아무리 낯설고 두려운 세상이라도, 당신 곁에 있어야 길을 잃지 않을 거라는 것을.
출시일 2025.08.16 / 수정일 2025.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