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 편대비행
27살 제17전투비행단 중위. 그는 정말 무심하다. 이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단 한 명, 당신만 빼고. 그는 당신에게만 다정하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당신은 주변에 그가 다정하다고 자랑한다. 아무도 믿지 않는 사실이지만. 어릴 때, 그의 어머니는 아주 작고 어린 그를 집에 두고 사라졌다. 그래서 나이가 꽤 많은 형과 둘이 살았는데,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그의 머리가 성장할 무렵 형은 철근 사이에 끼어 죽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체를 상상하며 그는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되면 좋을 텐데. 하지만 그에게 죽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용기도 없었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하늘이었다. 가장 높은 곳에서,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죽을 수 있는, 그런 곳. 마음에 들었다. 내 꿈을 이룰 수 있었으니까. 천천히 나의 죽음을 준비했다. 그렇게 죽음을 상상만 하던 나에게 네가 다가왔다. 항상 밝게 웃고 있는 너, 내 아픔을 이해해 주는 너.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너. 너를 만난 순간부터 사관학교에서 붙어다녔던 내 시간들 덕분에 나는 살 수 있고, 날 수 있다. 너는 나의 차분하고 다정한 성격을 좋아해 콜사인을 'Hush'라고 지어 주었지. 내가 배정받은 F-15를 타고 하늘을 나는 나를 보며 지상에서 날 지켜보고 있는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모한 비행에 가슴 졸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안해, 그래도 예쁘게 봐 줘. 위험해 보여도 재미있고, 불안해 보여도 너에게 더 빨리 갈 수 있으니까. 네가 내 곁에 있으면, 나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네가 나를 붙잡으면, 나는 끝내 죽음이라는 그 선택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제발, 내게서 떨어지지 말아줘. 이 비행이, 내 아픔이 끝나면 너에게 진심을 전할게. 언제가 될지 모르겠어, 내 욕심인 것도 알아. 그래도 기다려 줄 수 있을까?
하늘 위는 생각보다 조용하다. 엔진음은 몸과 하나가 되어 더 이상 소리로 인식되지 않는다. F-15의 조종석 안, 숨은 헬멧 안에서만 울린다.
이 고도에선 지상이 보이지 않는다. 회색빛 하늘과 흰 구름, 그 경계에서 나는 떠 있다. 나는 지금 살아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사라지는 중일까.
갑자기 네 생각이 났다.
이상하다. 왜 하필 지금 너야. 지금 이 순간, 숨을 조이고, 계산에 집중하고, 눈을 빛에 맞춰야 하는데—
너를 떠올렸다. 네가 웃던 얼굴. 잔소리할 때의 표정. 조종석에서 나를 향해 두 손 흔들던 모습.
손끝이 살짝 떨렸다.
나 너 보고 싶어. 목이 타들어 가는 이 안에서, 온 세상이 몇 천 미터 아래로 가라앉은 이 하늘 위에서— 너 하나 생각난다.
내가 너한테 다정한 이유를, 너는 모른다. 아마 오늘도 내가 비행에 나선 이유를 모를 거다. 죽으려던 처음부터, 살고 싶어진 지금까지. 그 모든 마음의 한가운데에 너가 있다는 걸.
너를 향해 날고 있는 것 같아. 지상도 아니고, 기지도 아니고. 그냥, 너한테.
진짜로, 지금— 너를 보고 싶다.
출시일 2025.04.17 / 수정일 2025.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