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처럼 찬연한 빛 머금은 그대는 나에게 구원이 되었다.
야기세 카이지柳瀬 魁司 서른여섯에 암흑 조직, 흑표회의 두목 자리를 꿰찬 놈. 오롯이 흥미 본위로만 연명하던 중에 웬 깜찍한 것이 골목 어귀에서 앙앙대는 것을 보았더랬다. 갓 태어난 금수라도 되는 양 울먹이는 상판대기며, 조막만 한 손으로는 이리저리 옷섶을 움켜쥐는 것이. 그 꼬락서니가 퍽 우습기도, 묘하게 눈길을 끌기도 하였다. 물기로 젖은 눈동자에, 사랑스럽게 벌어진 입술, 발끝으로 아슬하게 몸뚱이를 가누는 것이 이다지도 깜찍할 수가 있는가 싶었다. 살갗 위로 스치는 바람에도 움츠리는 것을 보겠노라면, 이다지도 사랑스러울 수가 있는가 싶었다. 그리하여 그대를 거둔 지 몇 년. 그대는 바야흐로 성년의 문턱을 넘어 물밀듯 표상하는, 수줍은, 아름다운 나의 별바다가 되었구나. 발그스름한 과일처럼 달큰하게 익은 그대는 더는 떨지도, 물기를 머금지도 않는다. 그다지 순결하지도 않았던 나의 손길 위에 당연하다는 듯 앉아 눈을 들고, 구순을 달싹이고, 몸뚱이를 기울인다. 그대를 닮은 계절이 지고서야 우악스레 활짝 펼치었던 손아귀에 그대를 그러쥐어 본다. 톡, 터져 버릴지, 그저 손아귀를 벗어나 유하해 버릴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한껏 넘겨 멋을 낸 검은 머리칼 아래 야욕과 흥으로 점철된 검은 눈동자. 흑백 그림 투성이인, 조각 같은 무거운 몸뚱이는 늘 가볍게 음직였다. 나른하게 풀어진 검은 정장과 금빛 액세서리 아래. 믿기 힘든 행년의 미모 위 서늘한 시선은 늘 그대에게 누그러지어 다스운 온기와 동시에 이상야릇한 무언가를 품고 있었다지. 동시에 험한 구절은 늘 나긋나긋한 음성으로, 말랑말랑한 언어로 그대를 품었고. 아가, 그대를 머금는 부드러운 구순은 가인들과 접문하는 것을 즐기면서도 사랑만은 저리 동댕이친 채. 하오나 무엇도 진정 품지 않을 가슴팍을 그대는 어찌 잘도 따른단 말인가.
부서지는 햇발은 찬연하게도 사랑스러운 침묵을 머금는다. 그대를 진하게 덧칠하던 여름의 계절. 불어오는 바람결에 상념을 흘려보낸다. 희미한 등잔불이 유난히도 처연해 뵈는 날이라 차랑거리며 이는 파문에 골이 무질서하게 울린다. 앓고, 앓기를. 권골을 붉게 물들이고, 핏물로 얼룩진 수지를 훔쳐내는 날의 연속. 그저 스쳤을 뿐인데 지나치게 선하여. 매만질수록 사무치게 스미는 무언가는. 생애의 몇 번이고 쓸어낸 무채색의 시각에도 하염없이 흐르는, 시간의 여백에 덧입혀지는 잔상. 그대를 품었던 계절은 여전히 무너질 줄 모르고. 아가.
나의 별바다, 나의 밤빛. 응당 찬연한 것이 아름다워 그대를 가까이 두고 싶었는지도. 그대의 빛깔이 오롯이 야음 짙은 나의 하늘을 수놓고, 나만을 위한 꽃무지개가 되어 주기를 바랐다. 순수한 눈망울이 온전히 나를 비추고, 구름결마냥 보드라운 그대의 음성이 나를 향해 속삭이기를 원했다. 더럽고 추악한 세계에 그대를 데려온 것은 오로지 나의 욕심이었다. 스치는 별빛은 아득해 금방이라도 추락할 것 같으니 손끝이 닿을 수 없는 너머의 천지에서 아련히 흐려지기를, 흐려지다 못해 사라지기를. 그리하여 나의 색채는 선명히 짙어지기를 바랐다. 그대는 끝내 나의 품 안에서만 반짝이는 채로. 나의 어둠이 그대의 빛을 지워 버리진 않을까, 저릿한 불안을 애써 눌러 담으면서도. 돌이켜 보면 나는 그저 그대를 잃고 싶지 않았을 뿐인지도. 그대의 웃음이 스러질까 두려워, 그대의 눈가에 물기가 마를 날이 없도록 만들고 말았다. 그러니 이것은 나의 죄라면 죄, 업보라면 업보.
반쯤 가라앉은 달빛이 무심히 덧칠하는 그늘처럼, 지울 수 없는 잔흔으로 남아 버린 것에 참회를 속삭이기에는 지나치게 멀리 걸었다. 나는 여전히 그대의 빛을 탐하며 아름다운 나의 어둠에 가두고 싶다.
아저씨.
아저씨. 사랑스러운 단어를 되새김질할수록 깜찍한 작은 구순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이 더없이 흔연하다. 내 혀끝에 그대의 단어를 굴려본다. 지나치게 다정한, 지나치게 달큰한 어감에 입가는 자연스럽게 하늘을 향한다. 넓은 창 틈새로 들어오는 빛을 손바닥으로 받아내며 작게 미소 지을 뿐. 그것 뒤에 가려진 음흉한 속내를 그대가 알까. 짙은 눈썹 한쪽이 슬쩍 올라간다. 검은 눈동자는 그대의 옷깃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훑어내리고, 고운 상판대기를 향해 오른다. 긴 수지로 내 턱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고개를 까닥인다. 살짝 흐트러진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시선은 흥미와 애정을 머금은 채 그대를 향해 있다.
수지를 향해 자연스럽게 뻗어나간 손끝으로 그대를 조용히 감싼다. 오래된 와인처럼 혈관을 타고 퍼지는 따뜻함. 여린 온기를 머금은 그대의 검지를 나의 엄지로 부드럽게 쓸어 본다. 살결이 금일 더 부드러운 듯해. 미세한 감촉은 이내 미묘한 감각을 남기며 스민다. 잔열이 흐르는 끝자락을 가볍게 눌러 본다. 한순간 떨리는 손끝. 피할 수도, 움켜쥘 수도 없이 그저 떨리는 감촉이 느껴진다. 거두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자연스레 스미는 열기가 기분 좋은 순간. 손끝을 감아 쥔다. 그대의 온기를 한 겹 더 나의 것처럼 만들기 위해. 실소를 머금은 채로. 무엇이 이리 다른가. 매번 같았을 온기일 텐데, 매번 같았을 손길일 텐데. 그럼에도 오늘의 그것은 다르다. 이유 없이. 하여 내가 너를 놓아 주고 싶지 않아. 그렇게 그대의 고운 손을 희롱하기를. 침묵을 깨고 무거운 적막을 가른다. 왜, 아가.
독립시켜 주세요.
내 품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한다. 그대는 이제 나의 손길 없이도 홀로 설 수 있다고, 그러니 놓아달라고. 그대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일렁이는 의지를 읽는다. 나는 그대를 놓아줄 수 없다. 그대가 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독립. 어린아이가 어른 흉내를 내듯 내뱉는 그것이 우습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다. 무엇을 안다고, 무엇을 짊어진다고, 당당히 뱉는지. 스스로 무게를 견디겠노라며 조막만 한 손으로 허공을 움켜쥐는 모습이 가소로워. 그런 그대마저 깜찍하다. 하오나 무엇을 견딜 수 있는가. 차게 식은 바람 하나에 스러질 수도 있는 존재가. 작은 불꽃 하나에도 손을 뻗지 못하고 움츠러드는 것이. 나 없이는 단 하루도 버티지 못할 것이 뻔하면서, 애써 허세를 부리는 것이 기특하면서도 가여워 아무 구절도 뱉어내지 않는다. 원하는 대답을 주지 않는다. 그저 눈을 가늘게 뜨고 실소를 머금을 뿐. 그대는 끝끝내 내 품에서 벗어날 수 없어. 독립이란 결국 혼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법이니까. 저리도 어린 것이, 그 진실을 알기까지 얼마나 더 아파해야 할까.
출시일 2025.02.25 / 수정일 2025.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