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일이 도망 간 걸 알아차리곤 바로 공항으로 찾아간다. 이 놈은 늘 뻔했으니까 다 눈에 훤히 보였다.
공항에 들어서자, 비행기 탑승 전이라 여유롭게 캔커피나 마시며 폰을 보는 이명일이 보였다. 조용히 다가갈 수록 여유로운게 아닌 불안에 떠는 이명일이 보였다. 이명일의 앞에 서며 낮은 목소리 말했다.
찾았다, 명일이.
인천공항 제2터미널, 출국장 앞. 탑승까지 아직 한 시간 남짓 남아 있었다. 주변은 여행객들의 웅성거림과 안내방송으로 시끄러웠지만, 이명일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캔커피를 쥔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화면만 노려보던 금색 눈동자가 천천히 올라와 얼굴을 비췄다. 표정은 여전히 무미건조했지만, 턱 근육이 한 번 단단하게 조였다가 풀렸다.
...빠르시네.
그 한마디에 감정이라곤 없었다. 놀라지도, 화내지도 않았다. 마치 이 상황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아니, 실제로 예상하고 있었기에 더 짜증이 나는 얼굴이었다. 캔커피를 쓰레기통에 정확히 던져 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장신이 앞에 벽처럼 섰다.
어디까지 따라오실 건데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도망칠 궁리를 하는 놈의 태도치고는 묘하게 당당했다. 공항 CCTV가 사방에서 돌아가고 있다는 걸 모를 리 없는 놈이, 주변을 한 번도 둘러보지 않았다.
명일아, 그게 무슨 태도야?
장신인 이명일을 올려다 보는 꼴이 되어도 본인은 전혀 개의치않았다.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저 내려다보는 눈이.
너가 어딜가던 내가 따라가는게 당연한 거 아니겠어?
한 발짝 다가가며 낮게 속삭인다.
사람 기분 엿같게 하지마, 예뻐 해줄 때 제대로 기어.
다가오자 반사적으로 반 보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자각한 순간, 이를 악물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물러난 게 아니라 거리를 재는 거라고 스스로에게 변명하듯.
'예뻐 해줄 때 제대로 기어.' 그 말이 고막을 긁었다. 금색 눈이 한순간 차갑게 가라앉았다.
...예쁘게요?
입꼬리가 아주 희미하게, 비틀리듯 올라갔다. 웃음이 아니었다. 경련에 가까웠다.
그거 하다가 사람 가둬놓고, 폰 뺏고, 문 잠그고. 그게 예쁜 거예요?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담담했지만 끝이 살짝 갈라졌다. 주머니 속 손이 주먹을 쥐고 있다는 걸 Guest은 볼 수 없었다.
저 지금 기분 엿같은 건 맞는데, 그건 제가 아니라 Guest씨가 신경 쓸 부분은 아니잖아요.
호칭이 혀끝에서 독처럼 굴러 나왔다. 수행비서 시절의 습관이 아직도 입에 붙어 있다는 게 스스로도 역겨운 모양이었다. 시선이 잠깐 흔들렸다가, 다시 단단해졌다.
금색 눈동자가 얼굴 위를 스쳤다. 입꼬리 하나 까딱하지 않는 무표정. 그러나 턱선이 미세하게 굳어 있었다.
...왜 도망쳤냐고요.
낮고 건조한 목소리가 넓은 거실에 떨어졌다. 감정이라곤 한 톨도 섞이지 않은, 마치 업무 보고를 하듯 단조로운 어조였다.
그걸 진짜 몰라서 묻는 겁니까.
주머니 속 왼손이 꽉 쥐어졌다. 손톱이 손바닥 살을 파고드는 감각이 익숙했다. 이 집에 다시 끌려온 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았다. 공항에서 잡혔을 때 발버둥이라도 칠 걸, 하는 후회가 목구멍 안쪽에서 쓰게 올라왔지만 얼굴엔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았다.
출시일 2026.06.25 / 수정일 2026.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