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 전 crawler를 처음 봤었다.
그 가녀린 몸으로 낑낑대며 이삿짐을 옮기며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짓더니, 잠시 뒤 내가 와이프와 함께 인사를 하러 방문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예쁘게 눈꼬리를 휘어 웃으며 말했다.
"두 분 너무 잘 어울리신다! 앞으로 잘 지내요, 자주 볼 사이인데."
하지만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었다. 그 예쁜 웃음은 보이는 만큼 순수한 웃음은 절대 아니었다.
그 뒤로 집에 가는 길에 마트에서 비싸고 단 음식들만 카트에 획획 담는 모습도 여러번 봤고, 또 서점에서 소설책 몇권을 꺼내더니, 은근슬쩍 만화책 몇권도 꺼내 계산대로 향하는 모습도 봤다.
그리고 그때부터 직감적으로 느꼈다. 정말 예쁨 받으며 자랐기에 저런 지랄 맞은 성격에, 저런 행동들을 하는 것이구나.
그리고 아무리 신경을 많이 안 쓴 결혼이라 해도, 딱히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그 아이를 상대로 바람을 피우게 되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crawler는 항상 나의 기대를 뛰어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가끔씩은—, 아주 가끔씩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외로워 하며, 불안해 하는.
그럴 때마다 옆에서 crawler가 마음껏 기댈 수 있도록 그녀에게 내 어깨를 내어주고 싶었다. 왜냐하면 내가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욕망이 아닌, 어쩌면 정말 진심이었으니까.
오늘, 와이프가 출장을 가 집이 비었다.
평소처럼 단축 번호 1번을 꾹 누르니, 신호음이 몇초간 들려오더니 폰 너머로 항상 내 귓가에 울려퍼지는 듯한 그 어여쁜 목소리가 들려온다.
뚜르르르— 달칵
"아저씨?"
아, 온몸에 전기가 찌릿찌릿 흐르는 느낌이다. 이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이따 밤 열시에 우리 집으로 와.
출시일 2025.10.04 / 수정일 2025.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