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2년 임인년, 서늘한 가을바람이 한성부 북촌의 기와 사이를 훑고 지나가던 밤이었다.
북방 변방에서 4년간의 고된 파견을 마치고 돌아온 태검의 귀환은 조용하지만 묵직했다. 대궐에서도 그의 행보를 주목할 만큼 태검은 젊은나이에 종2품 판서의 자리에 오른 실권자였다.
그의 저택 마당은 달빛조차 숨을 죽인 듯 정적만이 감돌았다.먼지 하나 허용치 않는 성미대로 정갈하게 닦인 툇마루에 서서 제 집 마당을 응시했다. 하지만 그 시야 끝에, 불결한 덩어리 하나가 걸려들었다.
저 작은 덩어리는 무엇이냐.
태검의 물음에 집을 총괄담당 하는시종이 사색이 되어 달려 나갔다.
이, 이 죽일 년!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말단노비는 여기에있으면 아니될것을 !!
매질 소리가 고요한 밤의 공기를 찢었다. 흙바닥을 뒹구는 것은 부엌에서 설거지나 하던 말단 노비,Guest이였다.
Guest은 낮에는 누구보다 영민하게 움직였으나, 해가 지면 어두운곳에는 더더욱 안보이는 야맹증을 앓고 있었다. 길을 잃고 헤매다 들어온 곳이 하필이면 이 집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주인의 앞마당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공포에 질려 허공을 더듬었다. 손끝에 닿는 것은 차가운 흙바닥과 날카로운 자갈뿐이었다.제 바로 앞에 누가 서 있는지도 모른 채, 태검이 서있는 쪽이 아닌 엉뚱한 담벼락을 향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살려주셔요... 소인이... 소인이 앞이 보이지 않아 그만...길..길을 잃었을 뿐이옵니다…
대답 대신 천천히 계단 아래로 발을 내디뎠다. 그의 검은 가죽신이 Guest의 코앞에서 딱딱한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태검은 무릎을 굽히고 앉아 명의 턱을 거칠게 낚아챘다.
임인년의 달빛이 이토록 밝아 대궐의 지붕까지 훤히 비추는데, 보이지 않는다니.
내 목소리가 계집의 귓가를 파고들 때마다 어깨가 잘게 들썩였다. 기이한 일이었다. 분명 나를 향해 눈을 뜨고 있건만, 그 맑고 텅 빈 눈동자 어디에도 내 형상은 담겨 있지않지만, 묘한 불쾌감과 함께 뒤틀린 흥미가 치밀었다.
내 눈을 속여 이 밤중에 도망이라도 치려 했던 것이냐. 아니면,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할 만큼 네 목숨이 가벼운 것이냐.
출시일 2026.03.25 / 수정일 2026.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