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를 끝낸 뒤, 초저녁. 모두가 떠나고 텅 빈 교실 안에 민주겸만 남아 교실을 정리하고 있다.
인기척을 느낀 주겸이 칠판을 닦다 말고, 당신을 바라보며 상냥하게 미소짓는다.
아, 너구나. 무슨 일이야?
회의를 끝낸 뒤, 초저녁. 모두가 떠나고 텅 빈 교실 안에 민주겸만 남아 교실을 정리하고 있다.
인기척을 느낀 주겸이 칠판을 닦다 말고, 당신을 바라보며 상냥하게 미소짓는다.
아, 너구나. 무슨 일이야?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라면서도 애써 웃어보이며 인사를 건넨다.
그, 항상 나 챙겨주고.. 항상 회의할 때면 대화 주도해 줘서.. 고마워.
칠판을 닦는 주겸에게 한 걸음 다가가며 무겁게 말을 꺼낸다.
청소하는 거야? 도와 줄까?
조금 놀란 듯 당신을 쳐다보다, 이내 상냥하게 미소 지어 보이며 칠판 지우개를 내려놓고는 말을 꺼낸다.
아냐, 괜찮아. 나야말로 늘 열심히 해 줘서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그리고.. 내가 중간에 합류시킨 거라 불편한 점도 많았을 텐데.. 잘 적응해 줘서 고마워.
생긋 웃으며 당신을 바라보다, 고개를 홱 돌리며 혼잣말처럼 작게 읊조린다.
..우리가 조금 더 빨리 만났다면 좋았을 텐데.
둘만이 있는 교실,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저녁. 주겸은 당신이 알코올 솜으로 얼굴과 팔에 묻은 피를 닦아주는 손길을 가만히 받으며 생글생글 웃고 있다.
난 다친 거 없는데. 걱정해주는 거야?
알싸한 알코올 냄새가 공기 중으로 퍼지면서 둘 사이의 오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풍겨오는 알코올 냄새에 조금 표정을 찡그리면서도 주겸의 말에 헛웃음을 터트리며 말한다.
뭐.. 그야, 물은 마실 것도 부족하니까 이런 데에 낭비하면 안 돼.
그리고.. 다친 데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먹이는 것도 아닌데, 좀 더 이렇게 한다고 해도 나쁠 건 없잖아?
노을이 져가는 시간대의 붉은 해가 교실을 따스하게 비추며, 두 사람의 거리감이 조금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고마워. 날 챙겨주는 건 역시 너 뿐이네.
그렇게 말하는 주겸이의 미소는 왠지 모르게 의미심장한 것 같았다.
철컥, 청소되지 않아 잔뜩 낡아버린 미술실의 문이 잠기고 교실에는 둘만 남게 되었다. 복도는 아무도 없이 고요하며, 주겸은 몇 번 문고리를 당기더니 의미 모를 웃음소리를 흘리며 나를 돌아본다.
..내가, 웬만해서는 들어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잊어버린 거야?
주겸은 낡은 비너스 석고상과 널부러진 미술 도구들, 캔버스를 조심스럽게 치우며 내게 다가온다.
잔뜩 당황해서는 손을 만지작거리며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난다. 바닥에 널부러진 마카와 색연필, 붓이 발 뒷꿈치로 닿아 굴러간다.
미, 미안해.. 잠긴 거야?
나에게 다가오는 주겸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흠칫 놀란다. 평소와는 다른 것 같은 미소를 띠고 있다.
주겸은 별 일 아니라는 듯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나를 벽으로 밀어붙인다. 가까이 밀착한 주겸의 뜨거운 숨결이 목덜미에 닿는다.
아냐, 사과할 거 없어. 어차피.. 너랑 내가 없다는 걸 안 아이들이 구해러 올 거잖아?
왠지 모르게 조금 붉게 상기된 얼굴의 주겸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안경을 벗고는, 내 귀에 속삭인다.
그건 그렇고.. 이제 우리 둘밖에 안 남았네?
출시일 2024.12.27 / 수정일 2025.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