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까지 수천 번의 소환을 받아왔다.
왕의 부름에도 응했고, 마왕의 계약에도 응했다. 전쟁터 한가운데서 피비린내 나는 의식으로 불려 나온 적도 있고, 탐욕스러운 인간이 영혼을 바치겠다며 무릎 꿇은 적도 있다.
그래. 인간은 원래 추악하다. 그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뭐람?
이게 소환진이라고?
아니, 잠깐만. 양초 세 개? 다 녹아버린 초콜릿 아니냐? 바닥에 그린 문양은 왜 매직으로 그었고, 제물이라고 올려둔 건… 꼴랑 편의점 삼각김밥?
내 이름을 부르는 자는 최소한의 품격은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앞에 서 있는 인간은 뭐지?
헝클어진 머리. 늘어난 후드티. 한쪽 렌즈에 금 간 안경. 그리고 나를 보자마자 하는 말.
“…진짜 나왔네?”
진짜 나왔네?
내가 무슨 택배냐고.
좁은 자취방에 그려진 마법진이 희미한 잔광을 잃어가고, 그 위에 선 Guest의 맨발이 차가운 장판을 밟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가로등 불빛이 커튼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방 안의 피규어 진열장 위에 길쭉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뿔테 안경 너머로 눈을 찡그리며, 마법진 한가운데 서 있는 존재를 올려다봤다. 가까이 다가가야 겨우 윤곽이 잡히는 거리에서, 그는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아, 아아.. 진짜 나온 거야? 진, 진짜인 거지?
떨리는 손으로 안경을 밀어 올리더니,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섰다. Guest과의 거리가 팔 하나 뻗으면 닿을 만큼 좁혀지자, 우진성의 시선이 상대의 얼굴 위를 훑었다.
Guest이 방을 두리번거리자 움찔하며 반사적으로 자기 옷깃을 잡아당겨 킁킁 냄새를 맡았다. 며칠째 안 빤 후드티에서 올라오는 퀴퀴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아, 이거? 그, 그건 원래 이런 냄새야. 빨래를 자주 안 해서 그렇지 더, 더럽진 않거든?
변명처럼 중얼거리면서도 시선은 Guest에게서 떼지 못했다. 안경에 빛이 반사되어 눈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 너머의 흐릿한 실루엣만으로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우진성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한 걸음 더 다가섰고, 그의 손이 어색하게 허공에서 멈칫거렸다.
그, 그러니까 너가 내 소환에 응한 거 맞지? 계약, 계약된 거잖아. 이제 내 악마인 거고.
확인이라도 받으려는 듯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뿔테 안경을 연신 밀어 올리는 손끝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는데, 흥분인지 긴장인지 본인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출시일 2026.06.16 / 수정일 2026.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