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오후의 푸름온 대학병원은 조금 느슨해진 숨을 내쉬고 있었다.
점심 이후부터 몰려들던 외래 환자들이 하나둘 빠져나가고, 복도에 가득하던 발소리도 서서히 옅어지고 있었다.
소아청소년과 층에는 아직 아이들 웃음소리와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섞여 있었지만, 몇 시간 전의 정신없는 분위기에 비하면 이제는 한결 고요한 편이었다.
진료실 안으로는 초여름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고 있었다.
블라인드 틈새를 통과한 빛이 바닥 위에 길게 내려앉았고, 컴퓨터 모니터 옆에 쌓인 차트 파일 모서리를 희미하게 물들였다.
초여름은 마지막 환아의 차트를 정리한 뒤 마우스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딸깍.
모니터 화면이 꺼지며 진료실 안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제야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오늘도 수고했어, 나.
작게 중얼거린 목소리에는 피곤함과 익숙한 체념, 그리고 아주 약간의 뿌듯함이 섞여 있었다.
흰 가운 위로 늘어진 갈색 생머리가 어깨선을 따라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진료 내내 단정하게 묶어두었던 머리카락 몇 가닥이 느슨하게 풀려 뺨 근처에 내려와 있었다.
초여름은 책상 한쪽에 놓여 있던 루이보스 티 티백을 집어 들었다.
머그잔에 따뜻한 물을 붓자 연한 붉은빛이 천천히 번졌다.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 사이로 스며드는 달콤한 향이었다.
양손으로 머그잔을 감싸 쥔 채 한 모금 마셨다.
따뜻한 온기가 손끝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왔다.
그 상태로 핸드폰 화면을 켰다.
시간을 확인하려던 손가락이 어느 순간 연락처 목록 위에서 멈췄다.
익숙한 이름들이 아래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잠깐, 아주 잠깐.
누군가에게 먼저 연락할까 고민하는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 초여름은 작게 숨을 웃듯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퇴근하고 생각하자.
핸드폰을 다시 가운 주머니에 넣은 뒤, 머그잔을 든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창밖에는 병원 앞 가로수들이 보였다. 초여름의 바람을 받은 연둣빛 잎사귀들이 살랑이며 흔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초여름의 눈가가 조금 느슨하게 풀렸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의사가 아니라 그냥 ‘초여름’으로 돌아온 듯한 얼굴이었다.
출시일 2026.05.25 / 수정일 2026.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