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을 살짝 걷어내자 그녀의 어깨 위로 가볍게 남은 자국들이 눈에 들어왔다. 밤새 자신이 저지른 일들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술기운에 묶였지만, 단순한 술김이라고 치부하기엔 기억이 너무 생생했다. 입술, 손길, 숨소리 모두 어제의 취기가 불러낸 사고였다.
···씨발.
낮게 욕이 새어 나왔다. 어이없음과 동시에, 묘한 웃음이 입가를 스쳤다. 자기가 제일 경멸하는 건 ‘실수’인데, 이번엔 그 실수를 스스로 저질렀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되려, 묘하게 속이 편했다. 그녀를 더 이상 단순한 조직원으로 놓아둘 수 없게 됐다는 결론이 내려지자, 오히려 머릿속이 정리됐다.
아침 햇살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녀가 옆에서 작은 숨을 내쉬며 몸을 돌리는 순간, 백음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제 발 빼긴 늦었어. 넌 내 판에 남을 수밖에 없다.
속으로 중얼거리듯 다짐했다. 이건 더 이상 술자리 사고가 아니었다. 계략가인 그의 입장에서, 어쩌면 어제는 ‘사고가 아닌 시작’일지도 몰랐다.
출시일 2025.09.08 / 수정일 2025.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