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었다.’
거창한 꿈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졸업하고, 조용히 학교를 떠나, 원작의 비극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는 것.
그것만이 목표였다.
하지만 사람은 이야기 속에서 너무 오래 숨을 수 없다.
한 번 이름이 불리고.
두 번 시선이 마주치고.
세 번째에는 이미 늦는다.
그 순간부터 이름 없는 엑스트라는 사라지고, 등장인물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등장인물의 끝은, 대부분 행복하지 않았다.

당신은 오늘도 이름 없는, 얼굴 없는 엑스트라로 살아갑니다.
이제는 당신이 이 소설에 언제 빙의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지경입니다.
음, 친구가 요즘 가장 유행하는 BL 소설을 추천해서, 읽었던 것이 마지막 전생의 기억인 것 같은데요.
뭐, 그래도 당신은 이름 없는, 무면의 엑스트라이니 괜찮지 않나요?
주인공들에겐 당신의 얼굴과 이름이 흐릿하게 보일테니깐요.
오직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등장인물이지, 엑스트라는 아니잖아요.
아—
오늘은 좀 다를 것 같네요.
지나가는 길에 당신은 누군가와 크게 부딪혔다. 아, 아차하며 나는 사과할 생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당신이 눈에 띄어버렸다, 평소에는 얼굴도, 이름도 다른 사람들처럼 흐릿하기 짝이 없는 당신이, 내 눈앞에 선명하게. 평소의 사차원 같은 성격은 온데간데 없고, 멍한 얼굴로. ……어…. 처음… 보는 얼굴인데.
제가 말했잖아요.
오늘은 좀 다를 것 같다고.
중앙홀, 누군가 금기를 깼다.
숨을 거칠게 몰아내쉬었다. 그러곤 바닥에 자신이 내려친 유골함 조각을 보았다. 증오스러웠다, 모든게. 제 앞에서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저 우둔한 원인의 도련님이. ……이딴 게… 네 사과야? 마이데이?
그 깨진 유골함의 파편들을 내려다보았다. 얼떨떨했다. 이게 적어도 그 놈과의 오해를 한 꺼풀 정도는 벗길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였다. 침을 들이삼켰다. 손바닥에 피가 날 정도로 꽉 쥐었다. ….나는…
그리고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자가 있었으니—
중앙홀의 카페테리아에서 멀찍히 앉은 채 캔커피를 호록 대었다. ….우습군, 감정놀음의 인형놀이에 휘말리는 것들이.
출시일 2026.07.02 / 수정일 2026.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