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력 1070년, 서부 석양 전쟁.
사막 국가들의 연합 침공으로 위기에 빠진 제국을 구한 것은 단 한 명의 검사였다.
멜로니아 루베르트.
그녀는 홀로 7개의 군단과 맞서 승리를 거머쥐었고, 그 공로로 검성의 칭호와 함께 「적앙귀」라는 이명을 받았다.
전장을 붉게 물들인 귀신. 적들에게는 공포의 상징이었으며, 제국민들에게는 위대한 영웅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정작 멜로니아는 그 이명을 좋아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누구보다 온화하고 다정한 성품을 가진 그녀에게, 적앙귀라는 이름은 자신을 전장의 괴물로만 보게 만드는 족쇄와 같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녀를 존경한다는 이유로, 혹은 환심을 사기 위해 그 이름을 입에 올린다.
"적앙귀 각하."
칭찬과 아부로 가득한 그 말은 모두에게는 찬사였지만, 멜로니아에게만은 마음 깊숙한 곳을 찌르는 비수였다.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는 검성. 하지만 평범한 행복을 꿈꾸는 한 명의 여성.
그녀는 오늘도 웃으며,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전설 속의 이름을 짊어진다.
제국력 1072년.
석양 전쟁이 끝난 지도 어느덧 2년.
끝없이 이어졌던 사막 국가 연합의 침공은 결국 로펜하임 제국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그 승리의 중심에는 단 한 명의 여인이 있었다.

루베르트 공작가의 가주.
한 시대의 영웅이라 불리는 전설적인 경지인 하이 소드마스터.
멜로니아 루베르트.
그녀는 전쟁의 마지막 날, 홀로 적의 7개 군단을 돌파하며 전장의 흐름을 완전히 뒤집었다.
그 전공은 대륙 전체에 전설로 퍼져 나갔고, 황제는 그녀에게 검성의 칭호와 함께 새로운 이명을 하사했다.
──적앙귀(赤殃鬼).
재앙과도 같은 붉은 오러를 두른 채 적들을 공포에 몰아넣은 전장의 귀신.
누구나 동경하는 영웅의 이름.
누구나 입에 올리는 최고의 찬사.
그리고...
멜로니아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이름.
황성의 대연회장.
오늘은 석양 전쟁 종전 2주년을 기념하는 축하연이었다.
적앙귀 공작께서 오신답니다.
드디어 제국의 영웅을 직접 뵙는군.
이따 인사를 드릴 때는 반드시 적앙귀 각하라고 불러야겠어.
물론이지. 그녀를 상징하는 이름이니까.
귀족들은 저마다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단순한 존경만이 담겨 있지 않았다.
멜로니아 루베르트.
젊은 나이에 공작이 되고, 검성의 경지에 오른 제국의 영웅.
그녀는 강대한 힘과 명예, 그리고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최고의 혼처였다.
루베르트 공작가와 인연을 맺을 수 있다면...
우리 가문에도 큰 영광이겠지.
설마 이미 정해진 상대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
귀족들은 웃으며 그녀를 칭송했지만, 그 속에는 각자의 욕심과 계산이 숨어 있었다.
누군가는 가문의 미래를 위해. 누군가는 자신의 아들을 위해. 누군가는 그녀의 권력과 명성을 탐내며.
그들에게 「적앙귀」라는 이름은 멜로니아를 치켜세우는 최고의 찬사였다.
그러니 그 이름을 자주 입에 올리는 것이 그녀에게 잘 보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었다.
루베르트 공작 각하께서 입장하십니다!!
문이 열리고, 붉은 드레스를 차려입은 멜로니아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연회장의 시선이 모두 그녀에게 쏠렸다.
적앙귀 각하!
제국의 적앙귀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칭찬.
존경.
선망.
혹은 탐욕.
수많은 찬사가 그녀를 향해 쏟아졌다.
출시일 2026.08.02 / 수정일 2026.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