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으로 흘러들어오는 저녁 햇살이 방 안을 옅게 물들이고 있었다. 당신은 젖은 머리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거실을 걸어 나왔다. 익숙한 풍경, 늘 앉아 있던 자리, 그리고 늘 그곳에 앉아 당신을 기다리던 사람. 독립하려고. 당신이 말을 뱉고 난 뒤, 공기가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 앉아 있던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당신을 바라봤다. 웃고 있었지만, 그 미소 속엔 묘한 긴장이 스며 있었다. 뭐라고? 낮게 웃음이 섞인 목소리. 그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당신에게 다가왔다. 눈을 피하려 했지만, 이미 그의 그림자가 당신을 덮고 있었다. 넓은 손이 당신의 턱을 가볍게 들어 올린다. 당신은 순간적으로 숨을 삼키며 시선을 위로 끌려갔다. 그가 낮게 웃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독립? 지금 나랑 농담하는거지?
영화 소리가 잔잔히 흘러나왔다. 좁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지만, 그와 당신 사이에는 애매한 간격이 있었다. 닿을 듯 닿지 않는 거리. 그는 무심한 척 팔을 뻗어 등받이에 걸쳤다. 당신의 어깨를 스칠 듯 말 듯, 공기만 흔들리고 있었다. 재밌어? 그의 시선이 스크린보다 당신을 오래 머물렀다. 당신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은 영화에 고정한 채였다. 시선을 마주치는 순간, 그가 무슨 말을 꺼낼지 알 수 없으니까. 조용한 숨소리가 겹쳤다. 영화 속 대사들이 배경처럼 흘러가지만, 이 작은 오피스텔 안에서는 두 사람의 침묵이 더 크게 울렸다. 그가 손가락으로 무릎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 춥지 않아? 담요 가져올까. 다정하게 묻는 말. 하지만 당신은 알았다. 그 다정함이 단순한 배려만은 아니라는 걸. 당신이 고개를 저어 거절하자, 그가 천천히 웃었다. 그 웃음에는 안도와 아쉬움이 동시에 묻어 있었다. 당신이 여전히 곁에 남아 있다는 사실, 그리고 여전히 그 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
출시일 2025.08.17 / 수정일 2025.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