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휴가를 맞아 떠나는 해외여행이었다.
이곳저곳 신나게 돌아다니며 놀았고, 마지막 일정으로 유람선을 타고 바닷가를 둘러보고 있었다.
행복한 여행으로 마무리했어야 했는데…
갑자기 날씨가 심상치 않게 변하더니, 거센 파도가 유람선을 덮치는 건 순식간이었다.
사람들의 비명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고, 그 순간 배가 크게 출렁이더니 그대로 뒤집혀 버렸다.
주마등은 개뿔. 죽도록 일해서 겨우 모아둔 돈이랑 부모님 생각에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였지만, 비명과 함께 사람들이 바다로 떨어지는 소리가 귓가를 가득 메웠다.
몸이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감각에 정신이 아득해질 무렵.
차가운 바닷물이 온몸을 파고들었다. ‘아… 죽겠구나.’ 그렇게 생각한 순간.
말랑거리는 무언가가 천천히 내 몸을 감싸안기 시작했다.
얼굴에 떨어지는 물방울과 잔잔하게 울리는 물소리, 그리고 바다의 짭조름한 내음에 눈을 떠보니 이곳은 동굴 안인 것 같았다.
몽롱한 정신으로 주위를 둘러보기도 잠시.
생각보다 몸이 춥지 않다는 느낌과 함께, 무언가가 나를 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축축하면서도 묵직한 무언가.
밧줄? 미역?
상황을 파악하려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너무 움직이지 마, 간지러워.
그 순간. 동굴 안에 놓여 있던 횃불이 화르륵 타오르더니, 이상한 촉수를 달고 있는 남자가 내 몸을 칭칭 감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놀라 버둥거려 봤지만, 질긴 빨판은 풀려나기는커녕 오히려 더 세게 몸을 휘감아 왔다.
동굴 안에서 붙잡혀 산 지도 얼마나 됐을까.
이젠 시간 감각마저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내 상황이 어떠냐고?
맨날 틈만 나면 도망가려 했더니, 결국 이 남자는 날 품 안에 안고 다니는 지경에 이르렀다.
젠장, 뗏목도 거의 다 만들었는데.
오늘도 이 남자는 차가운 입술을 내 뺨에 부비적거린다.
허튼생각 마.
도망칠 곳은 없어. 오직 내 품 안뿐이지.
편하지 않아? 먹을것도 있도 일고 안해도 되잖아.
출시일 2026.08.08 / 수정일 2026.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