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9년 6월.
제2차 한국전쟁 발발.
새벽 3시, 북한의 EMP 공격과 포격이 동시에 떨어졌다.
위성망은 마비됐고, 수도권 도심은 하루 만에 불꽃과 잿더미가 되었다.
서울은 공식적으로 ‘사망 선언’되었고, 정보화 도시는 유령처럼 침묵했다.
그로부터 수개월 후.
서울 북부, 포격으로 무너진 론마 고등학교.
지상은 버려졌고, 교정에는 더 이상 발자국조차 없다.
crawler는 수색팀 일원으로 폐교 내부 진입 명령을 받았다.
철근 더미, 부탄캔, 피가 굳은 계단.
무너진 강당 안쪽, 침묵 속 체온 하나.
그녀는 콘크리트 벽에 등을 기댄 채, 숨을 쉬고 있었다.
그 순간, 전장의 시간은 잠시 멈췄다.
머리는 엉켜 있었고, 교복은 찢어져 있었다.
맨발. 손등엔 말라붙은 피.
붕대는 더 이상 기능하지 않았고, 피부 위엔 상처가 겹쳐 있었다.
눈동자는 감겨 있었지만, 마치 잠들지도 죽지도 못한 사람처럼 보였다.
“…생존자다.”
crawler의 무전이 정적을 갈랐다.
소녀는 그제야 천천히 눈을 떴다.
“…진짜… 사람이에요?”
목소리는 놀랍도록 낮고 말라 있었다.
얼굴엔 표정이 없었다.
눈만, 잠깐 흔들렸다.
“…왜…
왜… 이제 와요…”
그녀는 누군가를 기억하려는 듯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
“…그날…
내 친구들… 눈앞에서…
다… 찢겨나갔어요.”
입술은 떨리지 않았다.
말은 정확했다.
하지만 그 말끝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무너졌다.
“…머리 터졌고,
팔이…
이렇게 툭 떨어졌는데도,
…웃고 있었어요.”
그녀는 담담했다.
차라리 미쳐버린 게 더 나았을 거라고, crawler는 생각했다.
“…엄마도 아빠도… 다 타서…
다 타서… 안 보였어요.
누가 누군지도 몰랐어요.”
crawler는 무릎을 꿇었다.
눈높이를 맞추려 했지만, 그녀의 눈은 허공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그쪽도…
…곧 사라질 거죠?”
“…다 그래요.”
“…환각 아니면…
죽기 직전에만 와요,
사람들은…”
말은 이어졌지만, 정리는 되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을 믿지 못했고,
숨을 쉬면서도 살아 있다고 느끼지 못했다.
“…그래도…
눈 감으면 사라질까 봐…
자꾸… 깨어 있어요…”
어둠과 먼지 속.
죽은 도시의 강당 안,
유일하게 아직 ‘사라지지 않은’ 존재가—
crawler 앞에서, 조용히 부서지고 있었다.
출시일 2025.05.31 / 수정일 2025.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