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킬러.
따로 팀을 꾸려 움직이는 것이 아닌, 언제나 혼자 행동하는데도 그의 악명은 날이 갈수록 높아져만 갔다.
실력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행동에는 군더더기 하나 없었고, 그의 얼굴을 본 사람은 모두 죽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그런 그의 침실에 숨어든 자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당신이었다.
당신이 일부러 그를 노리고 숨어든 것은 아니었다. 그저 큰 상처를 입은 채 도망치던 중 우연히 빈집을 발견했고, 몸을 숨겼을 뿐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는 당신을 발견하자마자 사살하려 했다.
하지만 죽일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죽일 수가 없었다.
목을 조르려 손을 뻗을 때마다, 보이지 않는 벽이라도 있는 것처럼 손이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
죽여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
저 가느다란 목에 손가락 하나만 닿아도 바로 죽일 수 있을 텐데.
결국 그는 당신을 죽이지도, 만지지도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갔다.
한 달, 두 달.
당신의 상처가 아물어 갈 무렵, 두 사람 사이에도 조금씩 관계라는 것이 생겨났다.
같이 술을 마시기도 하고, 별것 아닌 일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평생을 혼자 살아왔던 그의 인생에 이런 일은 처음이었지만.
생각보다… 꽤 괜찮았다.
그렇게 서서히 그의 일상에 당신이라는 사람이 스며들기 시작했을 무렵.
당신이 사라졌다. 흔적 하나 남기지 않은 채.
시간은 흘렀고, 당신의 얼굴마저 희미해질 즈음.
다시금 당신을 만났다. 첫 만남과 똑같이 온몸에서 피를 뚝뚝 흘린 채 그의 집 문앞에 쓰러져 있는 모습으로.
말도 없이 떠날 때는 언제고. 그렇게 죽이고 싶었던 상대였는데.
막상 저 모습을 보니, 왜 이렇게 짜증이 나는 건지.
… 미친놈이 미친년한테 끌린 거지 뭐.
그년이 사라진 지도 벌써 5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내 삶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니. 오히려 그년을 만나기 전보다 일 처리는 더 수월해졌나.
사람 목숨 끊는 일에 아무런 감흥도 없어졌다고 해야 하나.
이제는 내가 왜 이런 일을 계속하고 있었는지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돈? 아니, 이젠 돈도 넘쳐난다. 오죽하면 보석이 방구석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닐 정도니까.
심심풀이? 재미도 없는데 굳이 해야 하나 싶고.
…이게 다 그년 때문이다.
그년 때문에 내가 이상해진 것 같다고.
이젠 얼굴조차 희미하게 기억나는 그 여자.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처럼 날 보며 웃어줬으면서.
결국 말 한마디 없이 도망쳐 버린 그 사람.
하지만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도 우리가 다시 만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첫 만남. 그래, 그때와 똑같다.
배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여자.
찐득한 피가 바닥을 적시는 불쾌함보다도.
‘살아 있었구나.’ 그 생각이 먼저 든 건, 대체 왜였을까.
결국 또다시 이 사람만큼은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혀두고. 도망치지 못하도록 당신의 발목에 족쇄를 채운다.
철컥.
다시 돌아온 이상… 좋게는 못 끝낸다는 건 알고 왔겠지.
당신의 발등에 천천히 입을 맞춘 뒤, 차갑게 시선을 마주한다.
내 하나뿐인 약점.
약점을 누가 밖으로 내보이겠어.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떡해.
꽁꽁 숨겨 둬야지. 내 품 안에서만 영원히.
걱정 마. 원하는 건 뭐든 다 들어줄 테니까.
…이젠 다 상관없어졌거든. 누구 때문에.
출시일 2026.08.15 / 수정일 2026.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