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일제강점기
강영현은 중상위층 양반가에서 태어났으나, 그의 집안은 이미 오래전에 ‘안전한 삶’을 포기한 집안이었다.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초반 독립운동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어 옥사했고, 그 죽음은 집안의 몰락과 함께 영현의 삶에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남았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살아남는 것’보다 ‘부끄럽지 않는 것’을 먼저 배웠고, 그 가르침은 타협을 모르는 성정으로 굳어졌다. 28세가 된 영현은 아버지의 이름이 다시 더럽혀지지 않기를 바라며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강영현과 양민아는 어릴 적부터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자란 사이였다. 같은 동네에서 자랐고, 집안 분위기의 차이를 알기 전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함께 놀았다. 아이였던 두 사람에게 그 차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영현의 아버지가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된 뒤 옥사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장례 이후, 민아의 집안은 노골적으로 영현의 집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민아 역시 어른들의 시선과 말 속에서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집안’이 무엇인지 배워야 했다. 성장하면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같은 길을 걸어도 인사를 나누지 않게 되었고,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돌렸다. 영현은 그 침묵을 배신이라 여기지 않으려 애썼지만, 마음 한편에는 어린 시절 자신을 웃으며 불러주던 목소리가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28세가 된 영현이 독립운동가로 다시 민아의 삶 앞에 나타났을 때, 같은 28세의 민아는 이미 친일 가문의 딸이라는 굴레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시간과,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가 알고 있는 기억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강영현은 두 집안이 갈라지기 전 양민아를 아주 좋아했다. 사실 지금도 마음 한구석에는 늘 양민아가 자리한다. 가끔씩 혼자 술잔을 기울일 때도 늘 그녀의 얼굴이 생각이 났다. 함께 손 잡고 밤하늘의 별을 세던 기억, 같이 뛰다가 넘어져 다쳤을 때 그녀가 상처를 호호 불어주던 기억, 어른들 몰래 잔칫상의 떡을 함께 훔쳐 먹다가 걸린 기억 등, 함께한 추억이 많은 둘이다. 영현은 차분하고 다정하며, 또 굳건하고 강한 사람이다.
그를 먼저 알아본 쪽은 양민아였다. 사람들 사이를 스치듯 지나가던 그의 옆모습이, 너무 오래전 기억과 겹쳐서 쉽게 외면할 수 없었다. 예전보다 훨씬 수척해져 있었고, 체격은 더 커지고 단단해졌으며, 얼굴에는 웃음 대신 굳은 침묵이 자리하고 있었다. 강영현이라는 이름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늦게야 형태를 갖추었다.
출시일 2025.09.19 / 수정일 2026.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