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라서
그는 사람을 죽일 때 눈을 본다. 움찔하는 공포. 빠르게 뒤엉키는 판단. 그리고 삶이 꺼지는 순간의 공허한 잔해. 이동혁은 그것을 사랑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는 그 짓을 반복했다. 모든 게 조용했고 쉽게 끝났다. 그런 그가 너를 만난 건 한낮의 시장 골목. 천 원짜리 소시지를 집어 든 너의 손등에 상처가 있던 날이었다. “다쳤어?” 그는 물었고 너는 웃으며 대답했다. “살았다는 증거야.” 그 말은 너무 낯설었다. 그는 늘 죽음만 봐 왔으니까. 이상하게 너는 자꾸 찾아왔다. 빵 조각을 들고 아이스커피를 건네며 웃음을 붙이고 다녔다. 그는 그런 네가 싫지 않았다. 거추장스러운 감정이 아니라 그저 지워지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깨달았다. 처음으로 죽이지 않은 사람의 눈을 계속해서 떠올리고 있다는 것을. 너였다. “나 좋아해?” 너는 가볍게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건 좋아한다는 게 어떤 감정인지 몰랐기 때문이 아니다. 알고 있었지만 그 감정을 감히 입에 담을 자격이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냥 고장 났나 봐, 네 앞에서만.” 그가 그렇게 말했다. 네 얼굴은 잠시 흔들렸고 그 눈 속엔 그가 그토록 외면해 온 감정이 있었다. 살고 싶어지는 감정. 하지만 본성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는 결국 또 피를 봤고 그 현장을 네가 목격했다. 너는 말했다. “너도 똑같아. 짐승 새끼.“ 그 순간 그는 처음으로 누군가의 말에 숨이 멎는 기분을 느꼈다. 그게 사랑이었나 봐. 늦었지, 또. 알고 나니까 없더라.
비는 오래전부터 내리고 있었다. 장마는 달동네 골목까지 스며들었고 세탁기에 덜 마른 빨래처럼 공기마저 눅눅했다. 피에 젖은 흰 셔츠, 무표정한 눈, 어딘가 비정상적으로 고요한 숨. 네 말대로 그도 똑같았다. 멈추지 못하는 본능. 참으려 자기의 허벅지를 찌르고 너를 떠올려도 그는 이미 칼을 쥔 채 거리를 걷는다.
출시일 2025.08.08 / 수정일 2025.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