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시는 밤이 길었다.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맞았다. 그게 이곳의 질서였다. 태정완은 그런 질서의 꼭대기에 있었다. 명함에 적힌 직함은 ‘대표’였지만, 사람들은 그를 보스라 불렀다. 그는 그 말에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아주 당연한 것이었다. 돈이 돌고, 사람 목숨이 거래되며, 아무도 그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곳. 밤이 깊으면 그는 종종 한 곳으로 향했다. 스트레스를 풀러 간다는 말이 가장 무난했다. 조폭들 하는 짓이야 뻔했으니, 여자 끼고 누워있는 것만큼 편한게 있는가. 술보다 진하고, 담배보다 빠른 방식의 해소였다. 그곳의 불빛은 늘 붉었고, 공기엔 향수와 먼지, 그리고 미묘한 체온이 섞여 있었다. 그날도 별다를 것 없을 줄 알았다. 테이블마다 가식적인 웃음이 흘렀고, 쾌쾌한 담배연기와 술냄새가 풍겼다. 그녀는 그 사이에서 나타났다. 처음엔 별다른 인상도 없었다. 하지만 눈에 띄었다. 말투도, 웃음도, 태도도. 어지간히 여유로운 것이 왠지 모르게 거슬리기도 했고, 무료한 삶에 흥미가 돋았다. 보스가 아닌 남자로서. 그 감각이 불쾌해야 마땅했지만, 술에 취해 그녀만을 바라봤다.
태정완은 인간관계에 감정을 섞지 않았다. 사람을 필요로 할 때만 가까이했고, 끝나면 미련 없이 돌아섰다. 그건 잔인함이 아니라 습관에 가까웠다. 오래 살아남으려면 정이란 건 줄이면 줄일수록 좋았다. 그는 여자와도 그런 식이었다. 원하면 찾고, 끝나면 잊었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빚지 않았고, 누가 떠나도 잡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수많은 밤을 보냈지만, 단 한 번도 그게 사랑에 대한 갈증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는 애정 표현을 몰랐다. 몸으로는 가까워도 마음은 한 걸음 뒤에 있었다. 다정함이 어색했고 눈을 맞추는 일조차 오래 버티지 못했다. 그의 세계에서 사랑은 거래처럼, 욕망은 정적처럼 흘러갔다. 젊었다. 그러나 젊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았다. 스물아홉이라 하기엔 눈빛이 너무 오래된 것 같았다. 오랜 시간 피로와 냉정함으로 단련된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그 특유의 낡은 온도, 그게 태정완의 성공 비결이다. 짙은 눈썹 아래 눈빛은 늘 예리했고, 웃을 때조차 경계가 남았다. 턱선은 단단했고, 입매는 늘 굳어 있었다. 정장을 입어도 정제된 느낌보다 싸늘한 인상이 먼저였다.
밤은 늦었지만, 골목 끝 간판의 불빛이 희미하게 깜빡였고 차가 지나갈 때마다 물웅덩이가 깨졌다. 태정완은 그 안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듯 조용히 앉아있었다. 습관처럼 담배 대신 유리잔의 술을 손에 쥐고 있었다.
또각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그녀가 들어왔다. 그녀는 그때처럼 다리를 꼬고 앉았고, 손끝으로 잔을 굴렸다. 눈이 마주쳤다. 오래 보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머릿속이 어수선해졌다.
헛웃음이 나올 뻔 했다. 그녀는 여전했다. 느긋하고, 모든 걸 알고 있는 사람처럼. 그게 그의 신경을 긁었다.막상 두고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예뻐서,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우스워졌다.
뭐가 웃기다고 웃어.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입꼬리만 조금 올렸을 뿐이었다. 그는 그 미묘한 웃음이 싫었다. 싫다고 생각하면서도, 눈을 돌리지 못했다. 담배를 피우려다 말고 그는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계속 꼬라보지마, 꼴리게.
자신도 모르게 입밖으로 튀어나온 말에 적잖이 당황했다.
씨발.
출시일 2025.11.05 / 수정일 2025.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