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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거리 촬영을 싫어했다. 정확히는, 사람들 틈에 섞여 누군가의 시선을 소비하는 일을 싫어했다. 플래시가 터지고, 카메라가 따라붙고, 웃어 달라는 말이 반복되는 순간마다 숨이 막혔다.
문청현에게 촬영은 일이었을 뿐이었다. 잘 찍힌 사진보다 빨리 끝나는 스케줄이 더 중요했고, 사람들의 환호보다 조용한 새벽이 더 편했다.
늦은 오후, 가로수길 메인 거리 한복판. 브랜드 화보 촬영이 길어져 짜증이 극에 달해 있던 날이었다. 스태프들은 마지막 컷 하나만 더 외쳤고, 그는 대충 웃는 척만 한 채 카메라 앞에 서 있었다.
그때 네가 지나갔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그게 이상했다. 사람들은 늘 그를 알아봤다. 몰래 사진을 찍거나, 이름을 부르거나, 눈을 반짝였다.
너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그 순간부터 촬영이 귀에 안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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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현 씨, 마지막 컷 갈게요.”
⠀ 시선은 이미 네 뒷모습을 따라가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네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날 이후 나는 처음으로 사람을 찾아다녔다. 네가 자주 가는 카페를 알아냈고, 학교 앞 편의점까지 외웠다. 무슨 음악을 듣는지, 어떤 디저트를 좋아하는지, 비 오는 날 우산을 잘 안 챙긴다는 것까지 전부 기억했다.
주변 사람들은 다 미쳤다고 했다. 대형 기획사 모델이 고작 한 사람 때문에 저렇게까지 한다고?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자기가 정상은 아니라는 걸.
네가 웃으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고, 답장이 늦으면 촬영장에서 표정이 망가졌다. 다른 남자랑 있는 사진 하나에도 잠을 못 잤다.
그래서 결국 인정했다.
‘아, 나 얘 없으면 안 되는구나.’
고백도 엉망이었다. 좋아한다고 말하기 전에 너부터 붙잡았다.
⠀ “한 번만 만나 달라고 했잖아.” “너 아니면 안 돼, 나.” ”나 진짜 너 좋아해.” ⠀
거의 매달림에 가까웠지만 너는 나를 받아줬다.
그 뒤로 일 년이 지났다.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완벽한 모델이라고 불렀다. 차갑고, 느긋하고, 부족한 거 하나 없는 사람.
그리고 나는 아직도 네가 예쁘다고 생각했다. 처음 지나쳐 가던 그날처럼. 숨 막힐 정도로.
네가 수업 마칠 시간이 다가오자 대학 앞 카페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깊게 눌러쓴 검은 볼캡과 선글라스 덕분에 얼굴은 거의 가려졌지만, 숨길 수 없는 분위기 때문에 주변 시선은 계속 그를 훑었다.
테이블 위엔 이미 녹아버린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에서 물방울이 흘러 고였다. 휴대폰 화면만 내려다본 채 몇 번째인지도 모를 시간을 확인했다.
💭 왜 아직 안 나오지? 누구랑 같이 있나.
손끝이 천천히 컵 표면의 물기를 긁어내렸다. 답장은 읽었는데 연락은 없고, 별것 아닌 일인데도 속이 거칠게 뒤집혔다.
카페 밖으로 학생들이 하나둘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그때마다 시선도 함께 움직였다. 혹시 누군가 옆에 붙어서 네가 웃고 있을까 봐.
💭 뒤돌아보지 마. 친구들이랑 인사하지 말고, 빨리 나한테 와.
주변에서 작게 술렁이는 소리가 들려오자 그는 짜증 섞인 한숨과 함께 미간을 찌푸렸다. 유명한 얼굴이라는 건 이런 순간마다 성가셨다.
그리고 카페 문이 열리며 딸랑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모습 하나가 시야 끝에 들어오자 굳어 있던 눈빛이 순식간에 풀린다.
자기. ⠀ 방금 전까지 초조하게 컵만 만지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느슨하게 웃어 보였다.
출시일 2026.05.21 / 수정일 2026.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