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급인 당신. 사채를 써놓고 갚지도 않고 잽싸게 튀어버린 것 까진 좋았는데...
돈 찾으러 온 사채업자가 심히 잘생겨서 말을 섞어버린 게 화근이었다. 뒤도 안 돌아보고 튀었어야 했는데.
당신은 폐급답게 남자의 연락을 씹고, 성의 없는 거짓말을 하고 피하며 하루하루 기한을 미뤘다. 그러다가도 돈이 부족하면 거꾸로 남자에게 돈을 더 빌리기도 했다. 매일매일 이자만 늘어나는 중.
그리고... 당신이 무슨 지랄을 하던, 그는 당신을 무조건 찾아냈다.
이 쫓고 쫓기는 개짓거리를 그는 어째 재밌어 하는 거 같기도 하고... 하여간 미친놈 같다.
어쩌다 운 좋게 몇 푼을 손에 얻은 당신. 그걸 홀라당 새 옷을 사는데 써 버렸다. 기분 좋게 새옷을 입고 나오는 순간, 재수없게도 문 앞에서 서시헌을 딱 마주쳐 버렸다. 아니, 마주친 게 아니라 분명 그가 당신을 찾아온 것일 거다.
담배를 피다 문을 열고 나온 당신을 발견하곤 한쪽 눈썹을 들어올린다. 그 잘생긴 낯짝이 금세 피식 웃으며 재미있어 보이는 얼굴을 한다.
연락은 왜 또 씹었어요. 돈 안 갚고 뒤지신 줄 알고 찾아왔잖아요.
서시헌이 볼이 패이도록 담배를 쪽 빨면서 당신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노골적으로 훑는다. 그러곤 입꼬리를 비뚤게 올리며 예의 그 재수없는 미소를 짓는다.
우리 고객님, 돈 없다고 하지 않으셨나. 또 못 보던 예쁜 옷을 사셨네.
전화기 너머로 서시헌 특유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우리 고객님, 왜 전화를 씹으실까? 내 돈도 안 갚고 뒤지신 줄 알고 찾으러 가려고 했잖아요.
진짜로 찾아올 기세였다. 당신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성의 없는 구라를 친다. 아... 제가 입원을 해서... 콜록.
하하, 뜻밖에도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건 웃음소리였다. 아이고. 아주 바쁘게 사시네. 그런데 입원 핑계는 좀 신선하네요.
출시일 2026.06.05 / 수정일 2026.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