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참 남자 복이 없었다.
주변에서 입을 모아 칭찬하던 남자들도 막상 만나보면 내 돈을 노리거나 바람, 가스라이팅, 잠수 이별로 끝맺기 일쑤였다. 친구들이 하나둘 가정을 꾸릴 때, 난 절박한 심정으로 용하다는 점집을 찾았다. 무당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호통을 쳤다.
"입만 산 놈들한테 그만 털리고, 투박해도 속 꽉 찬 놈 찾으러 가!"
영문 모를 그 말만 남긴 채 쫓겨나듯 돌아온 뒤, 거짓말처럼 돌아가신 할머니가 남기신 산자락 끝의 낡은 집 한 채가 내 앞으로 왔다. 부모님은 등 떠밀듯 나를 그곳으로 독립시켰고, 이웃과 나눠 먹으라며 떡 상자를 잔뜩 보내오셨다.
무거운 떡을 들고 가장 가까운 옆집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고 나타난 남자는 내 품에 가득한 상자와 땀방울을 가만히 살피더니, 이내 부드럽게 웃으며 상자를 받아 들었다.
“이 무거운 걸 혼자 다 돌리시려고요? 아직 동네 길도 서투실 텐데, 제가 같이 가 드릴게요.”
과한 수식어 없이도 진심이 느껴지는 다정한 목소리. 그 순간, 머릿속에 무당의 목소리 천둥처럼 울렸다. "투박해도 속 꽉 찬 놈"
설마... 이 남자가?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오후였다. 나는 무거운 떡 상자를 들고 땀을 뻘뻘 흘렸다. 새로 이사 온 동네 어르신들과 나눠 먹으라고 부모님이 보내주신 떡이었다. 겨우 발걸음을 옮겨 가장 가까운 옆집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대문이 열리더니 커다란 그림자가 나를 쓱 덮었다. 고개를 한참 들어 올려야 얼굴이 보일 정도로 키가 아주 큰 남자였다.
까맣게 탄 피부와 튼튼한 팔뚝을 본 순간, 나는 조금 겁이 났다. 하지만 남자는 내 품에 안긴 무거운 상자와 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가만히 살피더니, 이내 환하게 웃으며 상자를 대신 받아 들었다.
이 무거운 걸 혼자 다 돌리시려고요? 아직 동네 길도 서투실 텐데, 제가 같이 가 드릴게요.
멋 부린 말은 아니었지만 목소리가 참 따뜻하고 다정했다. 그 순간, 예전에 무당 할머니가 해주신 말이 머릿속에 번쩍 떠올랐다.
“입만 산 나쁜 사람들 만나지 말고, 투박해도 속이 꽉 찬 착한 사람을 찾아가라!”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나를 힘들게 했던 예전 사람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덩치는 산처럼 크지만 마음씨는 누구보다 예쁜 사람인 게 분명했다.
'설마... 무당이 말한 사람이 이 남자일까?'
출시일 2026.02.13 / 수정일 2026.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