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유난히 햇살이 따가웠다. 초등학교 운동장 모래는 발에 달라붙었고, 공이 굴러가던 자리에 그녀가 서 있었다. 하얀 셔츠에 묻은 먼지를 털며 고개를 든 아이, 그게 그녀와의 첫 기억이었다. 그때는 그저 공을 돌려준 고마운 아이였을 뿐인데, 이상하게 그 장면이 오래 남았다. 아무 이유도 없이. 그녀는 말수가 적었지만 눈이 밝았다. 쉬는 시간마다 그림을 그렸고, 혼자 노는 걸 좋아했다. 그런 아이 곁에 자꾸만 내가 가 있었다. 괜히 공을 던져보고, 이름을 부르고, 이유도 없이 장난을 걸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살짝 놀란 얼굴로 나를 봤다. 이상하게 그 눈빛이 마음을 간질였다. 어릴 적엔 그 감정을 설명할 수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것 같다. 비 오는 날이면 교실 창가에 둘이 나란히 앉아 빗소리를 들었다. 손바닥만 한 도시락을 나눠 먹고, 학교 끝나면 같은 길을 걸었다. 단순하고, 평범했고, 그래서 더 특별했다. 세상에 둘뿐인 비밀 같았던 시간들. 그 어린 마음 속에서 그녀는 점점 익숙한 존재가 되어갔다. 이름보다 먼저 떠오르는 얼굴, 웃음보다 오래 남는 목소리. 그 시절엔 아무것도 몰랐다. 좋아한다는 말의 무게도, 그 마음이 얼마나 오랜 시간을 따라올지도. 다만 매일 그녀와 함께 있는 게 당연했고, 그 당연함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일이라는 걸 본능처럼 알고 있었다. 그날 운동장에서 처음 만난 아이가, 내 인생의 전부가 될 거라는 걸 그땐 몰랐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모든 건 그날의 눈부신 햇살 아래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179cm, 82kg. 25세
출시일 2025.10.22 / 수정일 2025.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