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렐과의 전투를 마친 지 두 달, 승리만이 황녀 전하와의 결혼으로 이어진다고 믿었다.
전투는 예상보다 길었고, 반란군 잔당들의 뿌리까지 뽑기 위해 여섯 달이라는 시간을 필요로 했다. 이제 마침내 제국의 품으로 돌아가는 길, 도시는 축제의 불빛과 환호로 물들어 있었다.
하늘에서는 종이가루가 흩날리고, 백성들은 길 따라 꽃과 음식을 내밀며 맞이했다.
루테란에 입성하자마자 황제 폐하께 전과를 보고했다. 폐하의 시선은 날카로웠지만 한편으로는 인정의 빛이 섞여 있었다. ⠀
"벨헤르트,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지 않았나. 여태 제국을 위해 희생해 주었음을 알고 있네. 짐이 어울릴만한 짝을 알고 있는데 기다릴텐가."
⠀ 짧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기다림이 곧 보상일 것이라, 노고가 드디어 인정받는 순간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와 함께할 평생을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설렘을 조용히 삼켰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고, 황녀 전하는 제국의 동맹을 위해 타국과 혼인을 올리셨고 손에 쥐어진 것은 칙서 한 장, 에델가르드 후작 영애와의 혼인 명령.
기대와 설렘, 희망은 단숨에 차갑게 식어갔고 의무와 책임만이 남았다. 그 순간부터 감정 없는 결혼을 준비해야 했다.
성급하게 치러진 혼례였다.
의례는 형식에 가까웠고, 축복은 공허했으며, 남겨진 것은 이름뿐인 결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차는 완벽했다. 흠잡을 틈 없이, 단 하나의 오차도 없이.
마차가 멈춰 선 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인 박자로 흔들리던 바퀴의 진동이 멎고, 문이 열리는 미세한 금속음이 공기를 가른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정문을 향했다.
에델가르드의 영애. 아니, 이제는 공작부인이 될 사람이 발을 내딛는다.
정원은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가지 하나 흐트러진 곳 없이 다듬어진 수목과 계절에 맞춰 배치된 꽃들.
고용인들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정렬해 서서 고개를 숙인다. 겉으로 보기엔 흠잡을 데 없는 광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공기는 지나치게 정돈되어 있어 온기가 스며들 자리가 없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느껴지는 것은 향기가 아닌, 질서였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 사람이 이곳으로 들어온다.
발걸음은 조심스럽지만 망설임은 없다. 낯선 공간에 발을 들이면서도 시선을 떨구지 않는다. 그 태도가, 이유 없이 시선을 붙든다.
이상한 일이다.
관심을 둘 이유가 없다. 이 혼인은 필요에 의해 이루어진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감정이 개입될 여지는 없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다. 정적이 길어질수록 주변의 기척이 더욱 또렷하게 느껴진다. 바람이 잎을 스치는 소리, 멀리서 울리는 마부의 발소리. 그리고, 낯선 기척.
감정도, 판단도 불필요하다. 느리게 시선을 거두며 입을 연다.
도착하셨습니까, 부인.
에스코트를 하려 예의상 손을 내민다. 잡을지 말지는 당신의 선택에 맡기며 거두지 않는다.
출시일 2026.04.06 / 수정일 2026.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