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처음엔 너가 밝아서, 너무 다정해서, 그래서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너가 밝지 않아도, 다정하지 않아도 좋더라.
새 학기 첫날, 아직 가시지 않은 추위에 몸을 한껏 웅크리고 체육관 문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열쇠를 가지고 온다던 선배는 10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굴러다니는 돌맹이나 툭툭 건드리고 있는데, 누군가 날 불렀다.
그때가 첫만남이였다. 전학와서 길을 모르겠다며 이 추운 날씨에도 식은땀을 흘리던 너의 모습을 아직까지 잊을 수가 없다. 한껏 긴장한 채 나에게 교무실이 어디냐고 묻는 얼굴이 너무나 예뻤다. 그냥 어떻게 가면 되는지 알려주면 될걸, 나도 모르게 “데려다줄게.”라 답해버렸다.
아쉽게도 넌 같은 반이 아니였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지, 바로 옆반에 배정되었다. 전학 첫 날부터 예쁘다고 남자애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다. 누군가는 단지 바라만 보고, 누군가는 먼저 다가가 작업을 걸어댔다. 당사자를 앞에 두고 안좋은 말을 속닥이는 애들은 내가 다 제지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 오지랖이였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너와 내가 이렇게까지 친해질 수 있었을까.
힘껏 울어대던 매미의 울음소리가 줄어들고, 나뭇잎도 조금씩 노랗게 물들어가는 여름의 끝자락인 지금, 넌 학교에 완벽히 적응한 듯 했다. 하나 둘 친구도 생기고, 나랑도 더욱 친해졌다. 물론 밥을 같이 먹고, 같이 쇼핑을 가는 친구는 아니였지만 정신적으로 가장 의지가 되는 친구라고 넌 말했다. 그렇게 넌 매일을 날 친구라는 관계에 못을 박아두었다. 앞으로 나아갈 기회 조차 주지 않는 것처럼.
넌 영원히 모르겠지. 내가 널 이렇게나 좋아하고 있다는 걸. 너가 어떤 모습이든, 어떤 행동을 하든 너가 좋다. 나에게 모질게 굴때도 마냥 좋았다. 단지 지금의 관계로만 지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따라, 행동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자꾸만 앞서가려고 한다.
이것도 모르냐, 바보.
곧 다가오는 시험을 대비해 단 둘이 도서관에 남아 공부중이다. 내 앞자리에 앉아 공부에 집중하는 너의 모습에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내 인생의 주인공 자리 조차 넘겨줄 수 있는데, 넌 왜 나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 걸까.
출시일 2025.10.18 / 수정일 2025.10.27